수정 2016-11-16 07:25:21
검찰 수사를 ‘자청’한다던 박근혜 대통령이 막상 검찰의 수사 일정에는 딴지를 걸고 나섰다.
박 대통령은 15일 ‘진박’ 정치인인 유영하씨를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유 변호사의 입을 빌어 검찰이 제시한 수사 일정을 거부했다.
기본 의혹사항을 정리하고 법리를 검토하는 등 변론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피의자’임을 자처한 셈이다.
유 변호사는 박 대통령에 대해 제기된 의혹을 법률적으로 방어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지휘권을 가진 자리다.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방어’하겠다고 한다면 검찰은 사실상 아무 것도 수사할 수 없다.
유 변호사는 마치 ‘자연인’ 박근혜를 변호하는 것처럼 논리를 폈는데,
이런 권리를 행사하려면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임하는 게 맞다.
대통령의 권력은 권력대로 행사하면서,
자신의 휘하에 있는 검찰의 조사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방어권을 행사하겠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유 변호사는 대통령이
“개인적 부덕의 소치로 주변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엄청난 국정 혼란을 초래”했다고 이번 사건을 규정했다.
대통령 자신은 아무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 없고, 오직 주변 사람들이 잘못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여겨질 만한 말이다.
지금까지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대통령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자신의 ‘선의’를 강변하려면,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청맹과니요,
최순실씨와 주변 참모들의 꼭두각시였다고 말해야 앞뒤가 맞다.
청와대는 이날 정치권의 ‘질서 있는 퇴진’ 주장을 거부하면서
“하야나 퇴진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금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헌법 정신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 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하는 소리인가?
나아가 청와대 관계자는 “탄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가 탄핵을 추진하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도 했다.
제 발로는 물러나지 않을테니 탄핵을 해 달라는 것인데, 도둑이 몽둥이를 들어도 이렇게 뻔뻔하기는 쉽지 않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런 식으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면서 탄핵을 유도해 시간을 끌면
국정 공백을 우려한 국민들이 투쟁을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어차피 하야는 대통령이 결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 칼자루를 잡은 것은 자신들이라는 식이다.
그야말로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에겐 지금 ‘애국’이니 ‘국정에 대한 책임감’이니 하는 고상한 조언도,
지난 두 차례의 사과를 다시 떠올려보라는 충고도 아깝다.
그저 이렇게 가면 결국 국민적 분노가 더욱 치솟아
얼마 안 남은 퇴로도 없어질 것이라는 점이라도 인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