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2016-11-08 07:40:39
새누리당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비박계가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는 가운데 강석호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친박계는 대통령의 탈당과 지도부 사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당내 갈등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은 특정 계파가 아닌 당 전체가 져야 할 일임을 새누리당은 알아야 한다.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
정 농단의 실체가 거듭 드러나고 있지만 여태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민의 분노만 키워왔다.
이 대표는 빗발치는 사퇴 요구를 거부할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이 ‘간교한 최순실의 피해자’라는 억지까지 부렸다.
민심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시키는 게 정당의 역할이라면,
새누리당은 이미 그런 기능을 상실하고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전락했다고 봐야 한다.
친박 세력이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해서 비주류인 비박계가 책임을 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이번 사건이 터진 때 지도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책임의 크기는 전혀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김 전 대표야말로 선대위원장으로서 박근혜 정권을 창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겨우 사과문 몇 줄을 쓰고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 책임이 면제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주류를 대표하는 또 다른 정치인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지만,
그도 2007년부터 비서실장이나 정책메시지총괄단장 등을 맡은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이명박 당시 후보 측에서 최태민 일가 관련 의혹을 제기하자 이를 '정치공작'이라 비난한 것도 유 전 대표였다.
비록 대통령 눈 밖에 나 원내대표직을 그만 뒀다고 해서 이런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헌정 파괴 사태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최씨 일가의 호가호위나 치부 때문만은 아니다.
공적인 의사결정이 대통령의 극히 사적인 인간 관계에 의해 좌우됐을 뿐 아니라,
독자적인 의사 결정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헌법이 규정한 ‘국가 원수'를 맡아온 데 따른 충격과 허탈함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정책적 과오나 도덕성 논란 때문에 거센 비판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 사태는 군부독재 시절의 대립 구도였던 민주 대 반민주조차 무색한 근대와 전근대,
문명과 반문명의 문제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2007년과 2012년 두 번의 ‘검증’을 거쳐 박 대통령을 공천한 새누리당에 있다.
대통령의 탈당 쯤으로 새누리당의 이런 원죄를 씻을 수 없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박 정권 창출에 앞장 선 사람들은 정계 은퇴라도 선언하고,
새누리당도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인정하는 게 순리다.
이 정도는 해야 진심 어린 반성이라 할 만하다.
이를 회피한 채 마치 새누리당 내의 비판 세력인 양 행세하는 비박계의 행태는,
친박계의 뻔뻔스러움에 버금가는 가증스러운 위선일 뿐이다.
국민적 분노가 당장은 새누리당을 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책임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통령과 최씨 일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워낙 커 단지 그럴 겨를이 없을 뿐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어설프게 자신의 책임을 가리려 한다면
머지 않아 민심의 격랑은 새누리당 전체를 덮어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