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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칼럼] 미국이 판단하고 한국이 받아들이는 사드 배치

또바기1957 2016. 7. 15. 21:49

군사주권 미국이 행사하는 현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해야

한국과 미국은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를 주한미군에 배치하는 문제를 놓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국회 질문이나 정부 측 답변, 언론 보도 등이 쏟아지고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한미상호보호조약에 의해 ‘슈퍼 갑’인 미국이 ‘을’인 한국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권리’를 집행한 연례행사의 하나라는 본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자심하고 한국 내에서도 논란이 심각한 사드의 한국 배치를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기 위해,

미군 부대 내에 설치하기로 한 속내에 대해서도 국내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가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한 일본 언론이 미국 측의 한국에 대한 압력을 거론한 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 뒤

미중 간 대립의 파고가 높아지는 것과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비춰진다.

 

사드의 한국 배치가 거론된 것이 지난 2014년이지만 최근까지 한미상호보호조약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은

정부나 언론 등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채 한미가 대등한 차원에서 ‘협의’하는 것처럼 알려져 왔다.

한미 정부, 국회와 언론 등이 사드와 관련해 한국의 군사주권 예속 상태를 언급치 않다가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화하면서 국회 문답을 통해 그 실상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정병혁 기자

 

김관진, 한민구가 고백한 미국과 한국의 군사적 갑을관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사드 배치가 국회동의 사항인지에 대해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은 미국이 한다.

미국이 (판단)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사드 한국 배치는 미국이 자체적으로 검토해서 한국에 요청했고,

한미동맹체제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2일 한 의원이 ‘사드 배치에 대해 왜 국회 동의를 받지 않느냐’고 따지자

“사드 배치는 주한미군이 우리에게 통보하면 협의하는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소파(주둔군지위협정), 주한미군전력 운용통보 및 협의절차 법규 등에 의해

국회 동의 등의 절차는 전혀 필요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답변했다.

 

김관진 실장이나 한민구 장관의 답변은 사드의 한국 배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지만

이 조약이 미국은 ‘슈퍼갑’이고 한국은 ‘을’이라는 군사주권 관계에 대해 직설적으로 언급치는 않았다.

질문을 하는 국회의원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충분치 않은 것 같은 질문에 대해

실무적 답변을 간략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과거 50년대 주한 미군이 전술핵무기 등을 한국에 배치하고 철수할 때 적용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 4조에 따른 것이다.

4조는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국의 육군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영문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라고 돼 있다.

 

이 조항은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로 시작되기 때문에

한미 간에 미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데 협의가 있을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미국은 한국에 미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이 권리이고 한국은 그것을 수락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의미한다.

SOFA는 미군사력의 주둔에 필요한 시설과 구역의 제공, 반환, 경비 및 유지를 주 내용으로 할 뿐

미국이 권리로 행사하는 미국 군사력의 한국 배치 그 자체는 협의하지 않는다.

즉 SOFA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 4조의 부속 문서 성격이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정의철 기자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은 한미 정부를 대표해서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토머스 벤달 미8군사령관이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한데 이어 사드를 경북 성주에 배치한다는 13일의 공식 발표도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사드 배치는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 반발하는 등 동북아에 신 냉전이 도래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중대 사안인데도

대통령은커녕 한미 두 나라가 장관이나 차관이 아닌 국방부 실장급이 맡아서 한 것은

1953년 제정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관행에 따른 것이다.

 

한미가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과 배치 장소를 한국군 실장급이 계속 발표하는 제도적 근거를 외면한

공허한 질문이 정치권에서 쏟아지고, 국방 주권이 미국에 예속된 현실을 직설적으로 언급치 않는

정부 당국자의 답변과 언론의 아리송한 보도만이 난무하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는 지난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반도 사드 전개를 개인적으로 미국 정부에 요청한 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공론화 된 뒤 2년1개 월 만에 공식화된 것이다.

 

이어 한미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지난 2월 7일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한

공식 협의 시작을 결정했다고 발표한 뒤 3월 4일 사드 배치를 논의할 한미 공동실무단 회의를 시작으로

배치 후보지역 등을 검토해왔다.

 

한미 두 나라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워싱턴과 서울에서 잊을 만 하면 관련 사실을 정부 당국자 등이 발언하면서

마치 두 나라가 협의를 지속하는 것과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그러나 두 나라는 공식적인 장관 협의 과정 등이 발표되지 않은 채 바로 공동실무단을 발족하고

배치 지역과 경비 등 기술적인 문제를 협의한 뒤 이날 발표한 것이다.

 

한미 두 나라 국방부 장관 등 고위층이 사드 문제를 공식 협의하고

중국과 러시아 반발 등에 대해 대책을 숙의했다는 내용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 4 조에 미국이 자국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이 권리로 명기된 것은

한국의 군사주권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이 미국의 권리를 허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할 수 있다고는 하나

전시작전지휘권조차 미군에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주한미군은 SOFA에 의해 한국에서 최근까지 국민적 공분을 야기할 정도로 심각한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려왔다.

 

지난해 방한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과 한민구 우리 국방부 장관
지난해 방한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과 한민구 우리 국방부 장관ⓒ정의철 기자

 

세계적 불평등 조쟉,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SOFA가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에 의해 중단된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국과 미국 간에 체결된 조약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철수 주장을 막기 위해 미국에 최대한 퍼 주기식의 불평등 조약을 감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배치가 한국 땅에 이뤄진 뒤 중국과 러시아가 대응 군사조치를 취할 경우 동북아에서 신냉전이 재연될 우려가 크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군사적 대치 상태가 훨씬 복잡해지면서 강대국들의 발언권이 더 커지게 되었다.

남북 간에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달성키 위한 자주적 노력의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를 계기로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주권을 행사하는 당사자라는 비극이 확인되었다.

한국을 군사적 주권국가로 분류하기 어렵게 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 전시작전지휘권 환수 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시급하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들 문제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리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한미 두 나라와 정치권과 언론들의 태도는

한미가 마치 대등한 군사주권을 행사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심화시켰다.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이 이에 대해 얼마나 비웃고 손가락질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너무 참담하다.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불평등 조약으로 굳어진 한미 군사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비정상화의 정상화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회복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