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대란’ ‘요금 폭탄’ 부르는 전기 민영화가 창조경제?
현실 전혀 다른 ‘일본 따라하기’ 실상은...
정부가 14일 전력 판매(소매) 분야 규제를 완화한 뒤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키로 했다.
이는 사실상의 ‘전력 판매 민영화’로 고질적인 전력 대란을 심화시키고
국민들에게 전기 요금 인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밋빛 청사진 뒤에 숨겨진 전력 대란 우려
지난 2011년 9월 15일 정전사고는 전기가 끊겼을때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초유의 정전사태였다.
시내 곳곳에서 3천여개의 신호등이 꺼졌고 자동차와 사람 모두 혼란에 빠졌다.
병원과 은행이 마비됐고 공장 가동이 중지됐다.
엘리베이터에 시민 2천여명이 갇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정전이 지역별로 순환되어 발생해 체감은 각기 달랐지만 국민 모두에게
‘전기를 아끼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른바 9·15 정전사태 이후 국민들은 ‘예비전력 추이’, ‘전력수급경보단계’와 같은 낯선 전문용어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정부는 적정 냉방온도를 26도로 맞춰야 한다고 홍보하고 공공기관에서는 냉방 온도를 평균 28도 이상으로 맞추고
사무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솔선수범’ 진풍경도 펼쳐진다.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
한국전력의 전기절약 슬로건이다.
“전기는 꼭 필요한 곳에 써야하는 소중한 프리미엄 에너지”라는 홍보 문구도 있다.
전기는 현대인의 생활에 있어서 '공기'와도 같은 존재가 됐다.
만약 박근혜 정부의 ‘전력판매 민영화’ 방안이 현실화 된다면 어떨까.
가뜩이나 만성적인 전력 대란 공포에 시달리는 지금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전력을 판매해 수익을 남기는 회사들이 생겨날 경우
어떻게 해서든 전기 소비를 많이 하도록 유도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일단 도매로 사들인 전기를 완전히 판매하지 못하면 손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는 다른 에너지와 달리 비축이 불가능하니 어떻게든 전기 수요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전기의 과소비 문제가 다시 발생하게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다수의 민간사업자가 전력 판매자로 나설 경우 소비자 선택권이 보장되고
신규서비스 창출이 가능하다며 장밋빛 청사진만 내놓고 있다.
정부는 이날 발표에서 일본의 예를 들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통신상품과 전력상품을 결합해서 내놓은 신규 상품을 ‘창조경제’의 예로 든 것이다.
정부 발표 자료에는 일본에서 판매되는 케이블TV와 전력 세트 상품에 대한 예시도 언급된다.
하지만 정부가 예로든 일본은 한국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일본은 예비전력이 상대적으로 충분하지만 한국은 앞서 살펴 본대로 매해 ‘전력 대란’을 걱정해야 할 판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이후 2012년 5월부터 보유하고 있는 원전 54기 대부분의 가동을 멈췄다.
일본 전력수급 통계 자료에 따르면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했다.
하지만 ‘원전 제로’ 원년이던 그해 처음으로 맞은 여름철에도 예비전력률은 꾸준히 10%이상을 기록했다.
일부 지역에서 순환단전등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지만 이후 5년이 지나면서
일본 국민들의 의식속에 전력 수급에 대한 불안은 사라지고 있다.

ⓒ제공 : 뉴시스
박근혜 정부의 묻지마 일본 따라하기? 돌아오는 건 국민 부담 뿐
기왕에 정부가 일본을 예로 들었으니 일본 전력 산업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일본 정부는 올 4월부터 전력 판매를 전면 자율화했기 때문이다.
‘전기, 편의점에서 사면 더 쌉니다’
지난 12월 일본 편의점 업계 2위 기업인 로손이 내건 슬로건이다.
로손은 전력소매업 진출을 선언하며 편의점에서 ‘전기’를 팔겠다고 밝혔다.
이제 일본 국민들은 전국에 퍼져 있는 4천여개 로손 점포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 그리고 전기를 살 수 있게 됐다.
로손의 전략은 ‘저가 전기’다.
도쿄전력 등 기존의 대형전력회사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로손이 판매하는 전기를 쓰고 전기요금을 납부하는 경우 로손 편의점 점포에서 사용할 수 잇는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
물론 이 포인트는 다른 상품을 구입하는데도 이용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는 싼 가격에 전기를 사서 좋고 포인트도 적립되니 일석이조다.
일본 정부가 일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전력 판매에 대해 사실상 무한 경쟁을 도입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높은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50년대 이후 도쿄전력 등 10개 대형 전력회사가 각 지역에 독점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왔다.
일본 4인 가구 평균 전기요금은 월 20만원대다.
여름철에 에어컨을 조금 튼다 싶으면 3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한국의 월 평균 전기요금 6만원(4인 가족 기준)의 4~5배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전력 판매를 자율화 할 경우 전력회사간 경쟁이 발생해 요금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 일본 정부의 이런 요금 인하 기대는 충족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각종 복합 전력 상품들이 쏟아져 가격이 낮아 지는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판매 회사들의 이윤이 더해져 가격 인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본질적으로 발전을 하는 단가가 떨어지지 않는이상 판매사업의 경쟁을 통해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TV와 인터넷 전화기가 결합되어 마치 요금이 할인되고 있다는 착각이 들지만 1인당 통신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전력에서도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일본은 이같은 착시현상으로라도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일본은 물론 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전기 요금제를 갖고 있는 나라다.
민간 기업이 전력 판매에 뛰어 들어도 전기 요금이 너무 낮아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정부도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연구를 마친 후, 올 하반기에 전력시장 개방 추진 로드맵을 수립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는 사업성 확보를 위한 요금제 전면 개편안이 담길 전망이다.
사회공공연구원 송유나 연구원은
“지금의 요금 구조로는 전력 판매가 됐을 경우 민간 기업들이 큰 이익을 볼 수 없다”며
“정부가 연구용역후 추진한다는 이야기는 거래가 가능한 판매시장 형성을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전력 판매 민간 개방은
그나마 한국사회의 전력 안정성에 기여해 왔던 한국전력의 부실화를 부채질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가 이상의 수익이 나는 주택용 전력이나 상가 건물 등에 사용되는 일반용 전력이
전력 판매사들에게 넘어갈 경우 한국전력의 부실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김주영 위원장은
“농업용 전기 등 소위 돈 안되는 부분에 판매사들이 진입할 리 없지 않느냐”며
“한전 부실화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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