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山 宋貴燮]/˚♡。─--평산 칼럼

[스크랩] 어떤 인연 (동물병원 원장과 세찌 이야기)

또바기1957 2009. 8. 3. 22:10

필자는 낚시를 취미로 하여 살아 오면서 참으로 많은 인연을 맺어왔다.

워낙 낚시라는 것이 남여노소구분이 없고, 빈부귀천의 구분이 없으며, 인간이 본능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취미생활 분야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도 다양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서울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는데, 필자가 몇 년 전에 정리한 <낚시의 역사> 중에서 1950년대에 한국일보 주최의 제 1회 전국 낚시대회에 직접 참가했던 사람의 아들이라며, 지금은 병상에서 마지막 생을 정리하고 누워계시는 100세가 다 된 아버님께서 그 낚시대회 역사를 쓴 글을 접하고 감사의 전화를 드리라고 해서 전화를 한다고 했다.

이 원로 낚시인인 아버님과는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그분이 산 증인으로써 그 역사대목을 입증하는 인연으로 나는 그 분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인연은 스쳐가는 바람처럼 모른는채 지나가기도 하고, 금방 잡았다가 놓는 끈처럼 쉽게왔다 그냥가기도 하고, 동아줄로 메어놓은 듯이 긴 세월을 이어가는 질긴인연으로 남기도 한다.

우리의 모든 일상은 이러한 인연의 연속 속에서 이어졌다가 끊어짐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의 인연일 수도 있고, 꽃이나 애완동물 같은 어떤 생물과의 인연일 수도 있고, 그림이나 애장품 같은 무생물과의 인연일 수도 있으며, 호연일 수도 있고, 악연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인연 중에서 오늘 필자가 쓰고자 하는 인연은 우리가족과 우리 강아지(세찌) 그리고 동물병원 원장(조원장)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집 강아지 <세찌>는 닥스훈트 종으로 방년 7살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큰 딸 아이가 대학 졸업반 때 취업기념으로 어른 주먹 보다도 작은 갓 젖땐 녀석을 당시 50만원을 주고 사온 녀석인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같이 살고있다.

그리고 방송 촬영이나 취재가 아니고 가족과 더불어서 낚시나 여행을 갈 때면 꼭 낚시터에 동행을 하는 녀석이다.(혹 소란피울까봐 아파트에 혼자 두지 못하는 이유가 크다.) 

 

 

 

  

이녀석이 겪은 첫번째 우여곡절은 필자나 아내가 강아지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문제였다.

그래서 처음 우리 집에 와서는 주로 큰 딸 아이 방에 가두어 놓다시피 하고 길러야 했다.

 

두번 째 우여곡절은  이녀석이 집에 온지 서너달 만에 온 몸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몸이 빧빧하게 굳어지고 곧 죽을 듯이 몸부림을 한 사건이었다.

큰 아이는 울부짖고...

그때 까지만 해도 예쁜 짓을 할 때면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는 정도로만 관심을 보이던 나와 아내는 급히 강아지를 안고 차를 몰아서 동물 병원을 찾았다. 생명의 위급함 앞에서 호 불호를 가릴 여유가 없엇던 것이다.

밤 늦은 시간이라 문이 잠긴 동물병원 앞에서 창에 있는 응급비상호출 번호로 전화를 하고 기다리는데, 10분 남짓의 그 시간은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동물병원 원장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온 몸이 굳어졌고 가녀린 숨만 겨우 쉬고있을 뿐이었고, 고통을 견디느라 배설을 하여 안고있는 내 몸이 온통 배설물 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그 어린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으므로 냄새가 나는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응급치료를 하고 나서는 그 옆에서 꼬박 뜬눈으로 밤을 세운 뒤 다행히 회복이 잘 되어 다음 날 퇴원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터는 나와 아내가 옆에 끼고 자기 시작을 했고, 이 녀석은 꼭 나와 아내 사이로 들어와서는 머리를 발쪽으로 하여 허벅지에 몸을 대어야만 편하게 잠을 잤다. 그렇게 살면서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깊은 정이 들었다. 

 

세번째 우여곡절은 이녀석이 아파트 승강기를 타고 나가서 행방불명이 된 사건이었다.

여름이라서 잠시 현관 문을 열어 두었는데 그 사이 아파트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우리를 따라서 자주 드나들던 가게와, 같이 산책을 했던 경로를 따라서 한 나절 동안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해가 질무렵. 스스로 돌아와서 아파트 주차장 내차가 서있는 근처를 뱅뱅돌고 있는 녀석을 찾았다.

그러고 나서는 완전히 없어서는 안되는 한 가족 처럼 되었다. 예전에 강아지 등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던 나와 아내가 이 녀석에게 어쩔 수 없이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3년차 부터 이녀석의 피부에 피부질환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녀석이 맞게되는 네번째 우여곡절이다.

한 번 생긴 피부돌기와 가려움증은 대학동물병원으로 부터 온 갖 병원을 다 다녀도 완전한 치료가 되지 않았다.

밤이면 한 이불 속에서 같이 잠을 자는 녀석이라서 더욱 심각했고, 빨리 치료를 해야만 하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하면 잠시 그때뿐이고, 금방 재발을 하고는 했다.

그러던 중에 매제가 한 곳을 추천했다. 그곳은 명견만을 관리하는 곳으로 우연히 우리 세찌 이야기를 하니 데려와 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제와 세찌를 데리고 가서 그곳에 맡겼다.

그런데, 여름에도 덮는 이불이 없으면 잠을 못자는 세찌를 늦가을 추위 속에 철망으로 된 작은 공간에 남겨두고 오는 것이 몹시 마음쓰였다. 할 수 없이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 내가 방송에서 입던 낚시복 상의를 벗어서 철망안에 넣어주고 왔다.

그때 다시가서 철망 안에 옷을 넣어주고 손을 빼는데 세찌가 내 손목을 앞 발로 감싸잡고 힘을 주는데, 절박한 심정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붙잡는 힘이 엄청나게 강했다. 떨어지지 않을려는 단말마적인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가 무섭도록 빛이 나면서 파랗게 변했다. 참으로 절박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치료를 해야하니 강한 마음으로 뿌리치고 돌아서 나오다가 정을 못참고 그만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이틀만에 나는 다시가서 세찌를 데려오고 말았다.

나도 아내도 차디찬 철망안에서 잠 못이루고 우리를 애타게 찾을 세찌 생각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찾으러 갔을 때 우리 세찌의 그 반가워하는 표정은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우연히 낚시를 좋아하는 동물병원 원장인 조양택 원장을 만났다.

 

 

 

낚시라는 취미생활이 인연이 되어서 만나게 된 조양택원장.

그와의 만남이 오늘 이야기 하고자하는 <어떤 인연>이다.

지금도 우리 세찌는 피부병을 완전히 완치하지 못하고 같이 산다. 다만 조원장과의 우연한 인연이 된 후 조원장이 주기적으로 보살펴 주는 덕분으로 그때 그때 적절한 치료를 하면서 지금은 비교적 깔끔하게 피부관리를 하고 있다.

조원장은 여러가지 피부질환 검사를 한 후 그동안 사람에게도 감염되어 위험하다는 진단을 뒤집고 같이 생활을 해도 된다는 새로운 진단을 내려서 우리가족과 세찌가 편하게 부비며 살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7년 동안.

우리는 이녀석을 아파트에 혼자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어서 중요한 모임이나 행사 마저도 스케줄을 조절하거나 포기하면서 살아왔고, 그야말로 한 가족으로 보살펴 왔다.

그런데 지난 2007년 봄에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잠을 자고 일어난 세찌에게 갑자기 하반신 마비증세가 온 것이다.

허리 이하의 몸은 아예 움직이지를 못하고 앞 발만 움직여서 겨우 조금씩 기어나가는 정도 밖에는 못했다. 그것도 통증이 심한지 움직이려고 하지를 않고 신음하면서 눈물만 흘렸다.

이때는 이녀석을 보살펴주던 조원장이 운영하던 동물병원을 당분간 접고 동물치과 공부를 더 할 목적으로 서울로 유학을 떠난 뒤였다.

할 수 없이 조원장의 전화추천으로 내로라 하는 동물병원 몇군데를 돌면서 진찰을 한 결과 흉추 8번 고장 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치료방법은 척추수술이며, 수술을 하더라도 성공확률은 반 반이 채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비용은 240만원 정도를 준비하라고 했다.

수술을 하더라도 성공확률은 절반이 채 안 되는데 수술비용은 240만원이라니...

아내와 나는 세찌를 데리고 집에 와서 밤잠을 안자고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때의 결론은 일단 수술을 한 후 그 결과 비록 불구가 되더라도 우리가 생명이 다 할때 까지 보살피자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단 조원장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기로 하고 전화를 했더니 조원장은 주말에 수업이 없으니 직접 와서 보겠다고 하면서 일단 몇가지 약처방을 해 주었다. 그것은 일반 약국에서 구입하는 사람이 먹는 약이었다.

앞발만 겨우 움직이는 세찌를 보살피면서 며칠이 가고... 주말에 조원장이 왔다.

그리고 세찌를 데리고 자기 선배 병원을 찾아가서 양해를 구하고 하루 낮과 밤을 진찰하고 관찰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수술을 하지않고도 자기가 약물치료를 통해서 치료를 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도 새벽까지 꼬박 밤을 지새면서 세찌 옆에서 관찰하고 있다가 새벽차로야 서울로 갔다.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기전에 필요한 약과 주사 처방을 해서 필자가 시간 맞춰 투약과 주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갔다.)

하반신이 마비된 우리 세찌는 소변이 마려우면 심한 신음소리를 내고, 대변이 마려우면 컹컹대고 짖었다. 그것이 의사 표현이고, 아내와  나는 그때마다 안아서 화장실로 대리고 가서 부축하고 일을 보게 했다.

그러면서 마주치는 세찌의 눈은 힘이 하나도 없이 애절한 눈빛으로 고통을 참고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쩼던 그렇게 치료하기를 3주. 그동안 조원장은 주중에 한 번은 밤차로 내려왔다 새벽차로 가고, 주말에 내려와서는 아예 세찌 옆에서만 시간을 보내다가 갔다.

그러다가 치료 3주차의 토요일. 조원장이 내려오고 있는 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세찌가 스스로 일어선 것이다.

비록 비틀거리다가 다시 주저앉기는 했지만 분명히 뒷발에 힘을 주고 일어서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또 한번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강아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고통 속에서 몸부림하던 세찌의 일어선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내려오고 있는 조원장에게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전화를 받는 조원장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그도그럴것이 그가 시도한 세찌의 치료 방법은 최초로 수술을 하지않고 척주마비를 치료하는 치료법을 시도한 것이며, 자기 생애 첫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은 비실비실하면서도 스스로 화장실에 가서 조금만 보조를 해 주면 용변을 볼 정도가 되었고, 1주일 후에는 보조가 없이도 스스로 용변을 해결하고, 집 안을 돌아다니기도 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이 산책도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갖은 재롱도 다 부린다.

 

낚시라는 취미생활이 인연이되어서 만난 동물병원 조원장. 

그 인연은 특별한 인연이 되어 지금도 우리 세찌와 필자가 자주 찾는다.

그는 서울에서 동물 치과 공부를 마치고 다시 광주로 돌아와서 깨끗하고 멋진 동물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세찌와 같은 증상의 다른 애완견을 약물로 치료하여 성공하고 있다.

병들어 신음하는 강아지 옆에 앉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꾸벅 졸다가는 깜짝 놀라서 링거액을 살피던 그의 모습에서는 진정한 의술을 펼치는 큰 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세찌는 조원장에게 가는 것을 싫어한다. 아이들처럼 주사 맞는 병원이 싫은 까닭이다.

그래도 나와 아내는 조원장에게 가는 날이 기분 좋다.

나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지난 주 조원장의 출조 얘기를 들으니 좋고, 아내는 그 사모님과 만나는 것이 좋다고 한다.

 

* 조앵택 원장이 치료 연구를 하면서 직접 실물을 다듬어 맟춘 표본 자료 

 

 

 

출처 : 평산 송귀섭
글쓴이 : 평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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