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피는 동백꽃을 보고자 소설을 쓰는 황순원 선생님과 거제도에 가보기로 했다. 등대가 있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거기엔 동백나무가 빼곡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거제도에 닿았을 때에는 1월 하순이었는데도 봄날씨 그대로였다.
거의 섬에 이르렀을 때 빗방울이 후둑후둑 지더니 순식간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바다 한 가운데 서는 게 아닌가.
그것도 겨울에 서는 무지개가 아닌가.
환영의 무지개를 세워 주는 것인가. 우리의 배가 무지개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이었다.
봄 무지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한 20여 년 전의 일이다. 해주는 피난민으로 도시가 콩나물 시루같이 가득했었다.
남하의 길을 떠나야 했다.
혼수감으로 마련해 두었던 명주 세 필과 금붙이를 옷장 깊숙히에서 꺼내 바랑에 넣어 주셨다.
이지역에서 이미 경찰들은 후퇴하고 남아 있는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치안대를 조직하여 피난민 속에 빨갱이가 끼어 있지 않나 하고 길목에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말투가 무뚝뚝해서 그런지 조사를 몹시 당했다. 또 한 마을에 이르러 북에서 피난 오는 길이라고 하자 다짜고짜 창고에 가두는 것이었다.
다음날 풀어 주었다. 그날이 성탄절이었다.
38선 쪽으로 약 3킬로 가면 교회가 있다고 해서 그 학생의 안내로 저녁예배에 참가했다. 삼십 여명의 교인이 모였다.
축가로 스무살 안팎인 아가씨가 찬송가를 부르는데 밝고 고운 음성이었다. 시골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여겨졌다.
우리의 형편을 들은 장로님이 지금 개성 쪽은 전선이니 갈 수 없고, 천상 배를 타고 가야 할텐데 배가 없다고 하며 유엔군이 곧 올라올 것이니 당분간 이 마을에 있으라는 고마운 제의였다.
교인들이 집집마다 돌아가며 우리에게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마을 학생들에 의하면 아버지는 빨갱이로 6.25 전에 이북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잠시나마 즐겁게 해드렸다. 교회서 처음보았을 때에는 저는 것 같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우리를 배웅하러 나온 그네에게 발을 다쳐서 몹시 불편할 텐데 성찬을 베푸느
돌아오는 길에 알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전다는 것이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괜히 그네에게 발 이 만약 가지 않고 발각되는 날이면 숨겨준 사람까지 엄단하겠다고 엄포를놓았다.
인민위원회에서 마을에 드나들어 사태는 점점 어렵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 여섯 명의 피난민이 있었는데 두 명이 붙들려 갔다. 난 지게를 지고산에 나무하러 가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마을의 피해를 적게 하기 위해 피난민을 보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되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니 결단을 내려야 할 고비에 이르렀다. 다리를 저는 그네를 만났다.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다시 북으로 갈 수 없어 망설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네가 숨겨줄 테니 이 마을에 있으라는 것이다. 밤에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날이 어둡자 약속 장소로 갔다. 그네가 오더니 자기 집 담을 넘어 오라는 것이다.
그리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이미 파 놓은 굴 안에는 침구까지 마련돼 있었고 저녁 식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가끔 집에 들를 때 숨어 있기 위해 파 놓은 것이다. 아버지는 올해 들어 소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그네만이 알고 있는 굴이었다.
이 굴에 있기로 양해가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낮에는 굴 안에 있고 이슥한 밤에나
이 마을에 가끔 들른다는 소식이다. 알아보니 여기서 50리 가량 가면 증산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네가 확인하기 위해 유격대원을 따라 밤길을 걸어 증산도를 다녀왔다.
4월인데 때아닌 소나기가 쏟아진 저녁 때였다. 남쪽 하늘엔 아름다운 무지개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 무사히 갈 수 있다는 길조예요."
명주와 금붙이를 바랑에서 꺼냈다.
나의 손도 떨렸지만 그네의 손도 떨렸다. 그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 고개를 돌렸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그네였다.
겨울 바다 위에 서 있는 저 겨울 무지개의 미세한 물방울엔 그네의 눈물이 섞여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 왔다. 그네와 함께보던 봄 무지개와 더불어 그네의 모습이 떠올라 나를 사로잡는다.
스무살 처녀 같이만 여겨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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