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하늘을 쳐다보니 가을이라 그런지 별들이 여물어 초롱초롱하다. 오늘은 개천절, 지난해 갔던 용못으로 낚시를 가기로 한 것이다. 나의 낚시 스승이기도 한 원선생과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날이 지난해 개천절이었다.
지난해 원선생은 여름내 가을내 번역을 하시느라 틈이 나지 않아
낚시를 전혀 못 가다가 여러 달만에 둘이서 낚시를 갔던 것이다.
그때 원선생께서는 대글대글한 붕어 30여 수를 낚으시고
서울근교에 이만큼 조용하고 경치 좋은 낚시터는 없다고
무척 흐뭇해 하시며 다시 이곳으로 오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원선생님께서는 나에게는 낚시의 약속만을 남긴 채
송전 낚시터에서 낚시하는 자세로 영원히 가셨다.
어쩌면 원선생은 낚시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셨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낚시꾼 가운데 가장 멋진 낚시인이었다.
고기를 낚는다기보다 낚시하는 것을 즐기는 분이었다. 그래서 죽음도 낚시터에서 가시지 않았는가.
청량리역에서 아침 첫차를 타고 동두천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현지에 닿은 것은 7시 조금 지나서였다. 이 못은 임진강 상류 강가에 있는데 장마가 지면 강과 맞닿아 좋은 낚시터가 된다.
원선생이 하던 자리에 두 칸 짜리와 두 칸 반 짜리 대를 차려놓았다. 두 칸 반 짜리는 원선생이 내게 선물한,대로 만든 낚싯대였다.
요즘은 거의 간편한 플라스틱제를 쓰지만 원선생은 대로 만든 것만 쓰셨고 바늘은 목줄이 긴 외낚시를 쓰셨다.
원선생은 대와 같이 세상을 곧게 살으셨으며 외낚시와 같이
세상에서의 외로움을 감수하는 생활을 하셨다고 여겨진다.
나도 처음에는 대낚싯대를 썼지만 지금은 플라스틱제로 모두 바꿨다. 오늘은 원선생이 준 대낚시를 꺼내왔던 것이다.
대낚싯대를 쥐자 다정한 원선생의 마음씨가 손에 젖는다.
바람 없이 밝게 갠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재미를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낚싯대를 차리고 30분이 지나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피라미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원선생과 함께 오지 않아서 고기들도 섭섭하여 입질을 안 하는가. 내가 처음 원선생을 알게 된 것은 회현동에 있는 어느 대폿집에서였다.
원선생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배꼽에 참외씨를 붙이고
다닐 때부터의 친구인 황선생을 통해서였다.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사귄 사이는 아니지만
누구나 그 두터운 우정을 부러워하였다. 인연이 되어 그 후 원선생을 따라 낚시를 다니게 됐던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님을 따라 낚시를 다닌 적이 있지만
그때는 멋도 모르고 다녔다. 그러므로 낚시는 신입생이나 다름이 없었다.
낚시 매는 법, 찌 맞추는 법, 미끼 쓰는 법, 자리를 선택하는 법등
원선생을 통해 배웠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낚시에 점점 취미가 깊어지는 어느 여름 장마 때였다.
발전소가 있는 팔당을 지나 능내역에서 내려 산등성이를 넘으면 나루터가 있다.
한강을 건너서 조금만 가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늪 이 산 아래 있어 잔재미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홍수가 져서 흙탕물인 강을 건너서 늪에 이르렀다.
나룻배로 강을 건널 때에는 물살이 몹시 세어서 겁이 좀 났다. 장마철이라도 이 늪은 낚시하기에 알맞은 물색깔이다.
톡특히 재미를 보았다.
돌아오려고 나루터에 나오자 물이 아까 건널 때보다 불었다. 뱃사공은 물살이 세어서 건너다니느라고 힘이 빠져 이제는 노를 젓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뱃사공네 집에서 하룻저녁을 신세졌다. 새벽에 눈을 뜨자 다시 늪으로 갔다. 이왕 온 김이니 오전 중만 즐기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제만큼 입질이 없다.
낚시 간 셈치고는 좀 일찍 돌아왔다.
원선생님 황선생님 김형이 집에 와 있었다.
아내는 내가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았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전화를 했더니
궂은 날씨에도 오신 것이다.
원선생은 능내로 갔으면 물이 불어 못 왔을 테니
지금쯤 올 때가 되었다고 말을 하자 이윽고 내가 들어섰다는 것이다.
하루는 원선생과 약속하고 청량리역에서 새벽에 만나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세차게 비가 아쏟지고 있었다. 아내는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떻게 낚시를 가느냐고 걱정이지만 약속을 했으니 나가봐야겠다고 집을 나섰다.
폭우가 쏟아져 청량리역 앞길에 물난리가 났다.
가로등까지 꺼져 칠흑같이 어둡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니 안 나오셨겠지 하면서도
약속 장소에 가보았다. 이미 와 계시지 않은가.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나왔으니 그냥 집에 돌아가느니
낚시터까지 갔다오자고 의논이 되어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버스를 탔던 기억이 새롭다.
이때는 고기를 낚으러 낚시터에 간 것이 아니라 비를 낚으러 간 셈이다.
점심 때가 되도록 찌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맞은편 벼랑에 곱게 물들어 있는 단풍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원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곱디 고운 단풍이 그대로 호수에 비치자 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단풍을 낚는다고 하시며 시정(時淸)이 젖어 있던 모습이 선하다.
오늘은 빈 바구니로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물 속에 잠긴 파란 가을 하늘과 흰 구름과 단풍만 낚고 싶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펼쳐 놓았다.
지난해 원선생과 왔을때에는 닭튀김으로 소주를 나눈 기억이 나서
이홉들이 소주 두 병과 닭튀김을 마련해 왔다.
메뚜기가 날아들어 점심을 펴놓은 위에 와 앉는다. 술을 따라 찌가 있는 쪽을 향해 뿌렸다. 한잔을 따라 입에만 대고 또 뿌렸다.
이렇게 해서 점심을 먹는 동안 두 병을 다 비웠다.
술은 원선생의 멋진 낚시의 마음씨를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고 원선생의 즐거움의 대상이었던 고기들에게 술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원선생이 계셨다면 얼마나 맛있게 마셨을까.
낚시터에서의 술맛은 일미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황선생은 지금도 술좌석에서의 마지막 잔은
원선생을 위해 따르는 것을 잊지 않는데
그 깊은 우정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제는 걷어야겠다고 채비를 하려는데
두 칸 반 대 찌가 쑥쑥올라오는 게 아닌가.
여섯 치 짜리다. 이어서 미끼만 끼워 던지기만 하면 잇달아 나오는 것이었다.
두 칸 대에는 통 입질이 없다.
원선생이 준 두 칸 반 대인 대낚시에서만 나오는 게 이상스러웠다.
소주맛에 붕어들이 입질을 시작한것은 아닌지.
붕어들도 술을 좋아하는가,아니면 저승에 가신 원선생이 보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낚싯대 탓인가. 순식간에 대글대글한 것을 삼십여 수나 낚아올랐다.
해도 기울고 해서 가야겠다고 주섬주섬 낚싯대를 거두었다. 고기를 들어내자 푸드득 요동을 한다. 순간 오늘 낚은 이 붕어들은 모두 놓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만 낚아간다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늘은 빈 바구니 로 돌아가는 게 마음 편안할 것 같아 놓아주었다.
이때 하늘에서 하나의 빨간 단풍잎이 석양에 반짝이며 내려온다. 고기를 놓아준 물무늬 위에 앉은 곱디 고운 하나의 단풍잎은
원선생의 다정한 마음씨의 한 조각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