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독재에 맞서 싸웠던 선생께선
독재자의 딸이 쏜 물대포에 맞고 의식을 잃은 지 317일 만에 숨을 거두셨다.
백남기 선생의 삶은 민주주의와 민족농업을 살리기 위한 숭고한 발자취였다.
1968년 중앙대에 입학하여 박정희 군부독재와 투쟁하다 두 번 제적되었고,
1980년 중앙대 부학생회장으로 전두환 일당에 맞서 투쟁을 지휘하다 투옥되고 퇴학당했다.
이후 선생께서는 고향인 보성에 내려가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카톨릭농민회 전국부회장,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을 역임하셨다.
백남기 선생을 죽인 것은 박근혜 정권이다.
작년 11월 14일 백남기 선생이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이유는
박 대통령이 한가마 당 17만원이던 쌀값을 2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해놓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에 정권은 물대포로 응답했고
선생은 그 날 쓰러진 이후 한 번도 의식을 찾지 못했다.
현 정권은 칠순 노인이 사경을 헤매는데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오히려 폭도로 몰아갔다.
설령 집회가 과격했다고 하더라도 국가 권력이 사람의 목숨을 뺏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온 국민이 백남기 선생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동안 박 대통령은 일언반구의 입장 표명도 없었다.
게다가 죽음이 임박하자 경찰차 20여대를 동원해 서울대병원을 감싸고 강제 부검까지 시도했다.
물대포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평상시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남기 선생의 죽음은 박근혜 정권이 살인정권, 독재정권, 패륜정권임을 보여줬다.
백남기 선생의 죽음은 곧 우리 자신의 일이다.
14만 명이 운집했던 작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정권에서 고통받는 민중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쉬운 해고’ 노동법 개악 반대, 재벌 사내보유금 환수, 밥쌀 수입 저지와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
노점 단속 중단, 세월호 진상 규명 등 민중총궐기 11대 요구안은 민중의 생존을 위한 당연한 요구였다.
이 나라의 민중이라면 그 누구라도 선생이 서 있던 그 자리에서 희생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백남기 선생을 떠나보낼 수 없다.
슬퍼 울기만 할 수도 없다. 박근혜 정권의 사죄 없이, 책임자 처벌 없이, 물대포 살수에 대한 진상 규명 없이
어찌 선생을 땅에 묻을 수 있겠는가.
청년 시절을 박정희 군부독재와 싸우다 노인이 되어 독재자의 딸에게 죽임을 당한
선생의 원통한 마음을 풀어드리지 않고 어찌 보낼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이제는 평안히 눈 감으시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선생을 땅에 묻는 의식이 아니라 선생의 고귀한 삶을 모두의 가슴에 새기고,
선생의 못다 이룬 뜻을 심장에 남기며, 포악한 정권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다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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