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를 하던 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 ‘김군’이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열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매일 10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번 월급 140만원 중 100만원을 저금했는데
500만원을 모으기 전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동생에게 용돈도 줄 정도로 성실하고 알뜰하게 살았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사고당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준비한 컵라면을 끝내 먹지 못했습니다.
서울메트로는 사건 초기에 책임이 2인1조 작업규정을 지키지 않은 김군에게도 있다고 협박하며,
유족을 만나자마자 합의하자고 해서 분노를 샀습니다.
서울메트로 직원이 아닌 하청직원이어서, 원청인 서울메트로가 책임지지 않고 적당히 사고를 덮으려고 한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일하지만 서울메트로 직원이 아닌 김군을 보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이 생각났습니다.
고인의 장례식장이 만들어진지 3일, 은성PSD직원은 드문드문 오지만,
신기하게도 김군과 함께 현장에서 일했을 메트로 직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7개월간 같은 현장에서 일했다고 하던데 메트로 정규직 직원과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군’은 서로 인사는 하고 다녔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희생자 김모씨를 추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너의 잘못이 아니야’
은성PSD라는 회사는 서울메트로가 정년이 다된 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고용보장을 하기 위해 만든 협력업체라고 합니다.
직원들 중 상당수가 서울메트로 출신 임직원들이고, 업무와 상관이 없는 일을 했던 직원들입니다.
메트로 출신이 아닌 정비공으로 실제 업무에 투입됐던 ‘김군’과 같은 청년 비정규직들의 월급은 144만원이었고,
또한 정규직 정비공 또한 매달 약 200만원 상당의 월급밖에 지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군’은 하청에 청년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김군은 실업계를 졸업해서 바로 대학에 가지 않고 취직을 했다고 합니다.
구의역 추모장소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학교가 달랐지만 ‘김군’을 선배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도 졸업하면 ‘김군’과 같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되기 때문에,
‘김군’을 자신의 선배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각 반의 취업률을 높이고자 취직을 강조하고 있고,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20살, 21살 젊은 청춘들이 있기에 일하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의역 9-4승강장을 추모하는 사람들 중 또래 20~30대 청년들이 많습니다.
메트로가 유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이번 사고에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은 김군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구의역에 온 청년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포스트잇에 적어줬습니다.
김군의 죽음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하청 비정규직 청년’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겁니다.
김군은 언제나 내가 될 수 있다는 감정적 공감이 구의역 9-4승강장을 지키고 6월2일 추모행진을 만들었습니다.
5년 전, 제가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일 때 같은 학교 학우인 ‘황승원’군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마트 냉동 창고에서 죽은 안타까운 사건을 두고 싸웠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23살 대학생이 냉동 창고에서 죽었을 때 “나 때문에 네가 죽었다”고 책임지고
미안하다고 했던 사람은 가족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 내 책임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다 취하겠다고 나서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은 덜 아팠을 것입니다.
당시 황승원 학우의 삶은 한국사회에 반값등록금이 왜 필요한지 이야기해줬습니다.
서울시립대는 다른학교의 절반이었던 등록금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승원 학우는 밥값을 걱정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황승원 학우의 희생 뒤 한국사회가 바뀌었더라면
김군이 10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면서 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더욱 눈물이 났던 것은 김군 또래의 친구들이 구의역 9-4 승강장에 햇반, 김치, 과자 등을 놓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슬픔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김군의 삶은 대한민국에 왜 하청 비정규직 청년들을 정규직화 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사회 초년생 청년이라는 3중고 때문에 김군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했다고 봅니다.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현실은 무엇이 바뀌었나 고민하면서,
제2의 김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친구인 우리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가족을 위로하는 방송인 김제동ⓒ양지웅 기자
처음 <구의역 9-2 승강장에> 추모공간을 꾸미는 것부터 우리에게는 싸움이었습니다.
서울메트로 직원이 추모분향소를 아래로 옮기고 떼어내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자리를 지키며
이 자리를 옮기면 밤새 그곳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청년들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시민들이 추모공간을 지켜줘서, 서울메트로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습니다.
아직 은성PSD에는 김군의 고등학교 친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김군의 친구만은 다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근본적 재발방지대책은 지하철 곳곳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을 서울메트로 정직원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힘으로 이뤄내기 위해 행동합니다. 많은 분들이 책임지는 마음으로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장례식장에서 썼습니다. 6월3일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벽,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많은 분들이 장례식장에 가족들과 함께 슬픔을 나눴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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