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의 면담은
총선 이후 ‘협치’의 가능성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계기다.
그러나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대통령은 타협 대신에 ‘타협하는 척’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특조위의 활동기간을 보장하는 문제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세월호특별법 개정문제에 대해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문제이고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며
“(부정적) 여론을 감안할 문제니까 국회에서 잘 협의해서 처리해 달라”고 답했다.
지난 달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한 말을 반복한 것이다.
세금을 거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천박하고,
여론의 찬반을 핑계로 댄 것은 자신이 최후의 심판자인양 자처한 것이다.
굳이 찬반을 말하자면 대통령 자신이 반대의 편에 서 있고,
청와대를 찾은 야당 원내지도부가 찬성에 서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찬반이 있으니 국회에서 알아서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차라리 논쟁을 하고, 결론을 짓는 게 마땅하다.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은 새누리당은 회동 직후 브리핑에서
“그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이해한다. 야당 입장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도 마찬가지다.
야당 원내대표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해달라고 몇차례에 걸쳐 요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기념곡 지정은 찬반(양론)이 있다. 이것이 국론분열로 이어지면 문제가 있다”면서
“지혜를 모아 좋은 방안을 찾아보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보훈처에 공을 떠넘겼다.
하지만 보훈처는 국회의 관련 결의안조차 무시하고 이 노래를 폄훼하는 데 앞장서왔다.
전임 정부 때 임명되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승춘 보훈처장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몽니를 부려왔다.
박 보훈처장의 오만한 태도 뒤에 박 대통령이 있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또 보훈처에 책임을 넘겼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6개월이 넘게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백남기 농민은 이번에도 박 대통령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가 회동 말미에 “특별히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으나,
박 대통령은 말없이 메모를 하는 걸로 응답했다. 그동안의 ‘무시 전략’을 계속하겠다는 뜻일테다.
박 대통령이 여야3당의 원내지도부를 만나 반갑다는 표정을 짓고,
개인적 관심을 표시한 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좋은 일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타협하는 척’은 했지만, 타협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집은 단 하나도 바꾸지 않고, 곤혹스러운 질문은 떠넘겼다.
대통령이나 야당이나 다음에 또 보자고 하고 있지만, 이런 대화라면 얼마 안가 좌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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