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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못살겠다 바꿔 보자” 강남 서민의 선택

또바기1957 2010. 6. 24. 13:23

[커버스토리]“못살겠다 바꿔 보자” 강남 서민의 선택

위클리경향 | 입력 2010.06.24 11:27 | 


ㆍ진보 단체 활동 점차 뿌리…'보수후보 당선' 변화 조짐

↑ 6월 15일 ‘강남촛불’이 강남역 앞에서 ‘4대강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강남촛불은 2년 동안 꾸준히 강남에서 진보적인 의제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최영진 기자

 
경기도 하남시에 살던 정 모씨는 3년 전 서울 송파구로 이사했다.
중학생, 초등학생 두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다.
 
송파구에 이사온 뒤 말로만 듣던 강남의 보수성을 실감했다.
정씨는 "사람들이 강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은연중에 자기가 어디에 사는지를
밝히기 좋아하더라"면서 "강남은 편의시설도 좋고 대형 병원도 많다.
 
주민이 살기 좋은 환경이다.
그래선지 자신이 누리는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보수적인 정당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씨는 6월 지방선거에서 변화를 이야기하는 후보에게 투표했다.
투표는 했지만 보수적인 강남에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오세훈 서울시 후보가 힘겹게 승리하고, 진보 단일화 후보인 곽노현 교육감 후보가 당선된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씨는 자신처럼 강남의 변화를 원하는 이가 주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남 벨트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는 보수적인 정당의 텃밭이었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은 이곳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진보적인 시민사회 단체도 강남 벨트에서는 활동이 미약했다.
진보 정당이나 시민사회 단체는 강남에서 비주류에 불과했다.
진보 진영은 강남의 보수적인 벽을 뚫기 힘들어 했다.

6월 지방선거 결과는 진보 진영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민주당과 진보 정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득표를 했고, 20여 명의 기초 자치단체 의원을 배출했다.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도 강남벨트에서 29.8%의 득표율을 얻었다.
2008년 진보 교육감 후보가 얻은 득표율보다 높다.

강남의 변화를 불러온 것은 기존 정당이 아니다. 진보 정당은 후보를 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민주노동당 강남구 지역위원회 석진협 사무국장은 "강남에서는 후보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강남에서 운동을 해 보겠다는 인사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강남에서는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의 의제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교육감 선거를 보면 진보적인 의제도 통할 수 있다고 느꼈다.
이젠 진보 진영도 보수 진영과 진보적인 의제로 보수 진영과 맞붙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강남에서 비주류로 여겨진 진보 진영이 과거에 비해 높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 견제 바람이 불었고, 강남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시민사회 단체의 연대가
성과를 올린 것이라는 평가다.

진보 교육감 후보 득표율 더 높아져

대표적인 시민사회 단체가 200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강남촛불'이다.
 2008년 7월부터 강남촛불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앞에서
꾸준하게 서명운동이나 촛불 집회를 이어갔다.
 
강남역은 전국에서 하루 유동인구가 서울 명동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는 곳이다.
강남촛불이 이렇게 오래갈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들은 여타의 진보 정당이나 시민사회 단체와 성격이 달랐다.
강남촛불은 인터넷 카페 동호회다.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고,
강남 주민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사무실도 없고, 상근 활동가도 없다. 정치에 너무 매몰되지도 않았고,
회원들 생각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2년 동안 강남에서 꾸준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진보 정당에서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인지도와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6월 15일 강남 촛불을 만나기 위해 강남역으로 향했다.
오후 7시가 되자 사람들이 이젤을 꺼내 4대강 반대 전시물을 설치했다.
전시물을 설치한 뒤 책상을 펴고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전시물을 본 사람들이 한두 명씩 서명을 하기 시작했고, 서명하는 이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서명하는 이들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2년 동안 강남역 앞에서 이어진 강남촛불 활동이 강남에 몰고 온 조용한 변화다.

강남촛불 초기부터 활동한 신윤영씨는
"2년 동안 꾸준히 활동을 해 온 덕에 정당 사람들도 우리에게 지원 요청을 할 정도로
영향력이 높아졌다"면서 "종부세를 내는 사람도 다른 지역보다 많지만 강남은 세입자도 50%나 된다.

강남도 다른 지역처럼 진보 진영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강남촛불 회원인 육오영화씨도 강남촛불 초기부터 활동했다.
육씨는 "강남은 부자동네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흐름이 있지만 서민도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서
"곽 교육감 당선자가 강남에서 표를 얻은 것은 서민층이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고 답변했다.

그동안 강남의 상위층 유권자들은 보수 후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나머지 비주류 후보들은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탈락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이에 반해 강남 하위층 유권자들은 진보 진영에 대해 지지하지 않았고
'누가 나오건 간에 그놈이 그놈'이라는 분위기만 팽배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진보 진영은 갈수록 힘을 잃어갔던 것.
그러나 강남에도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멀리 타워팰리스가 보이는 포이동 266번지 구룡마을은 판자촌 마을이다.
사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하는 아이가 대다수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의 공부를 돌봐 주는 공부방이 학생들의 유일한 사교육 기관이다.
구룡마을은 강남의 두 얼굴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곳 사람들도 이번 지방선거 투표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이동 공부방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오태우씨(성균관대 재학)는
"강남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린 덕인지
마을 주민들도 투표에 적극적이었다"면서 "6월 지방선거가 강남의 변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변화의 시발점 정도는 된 것 같다.
진보적인 활동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변화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시민단체 연대 강화 움직임

시민사회 단체들도 강남의 변화를 이어가기 위해 연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남촛불은 강남 지역에서 힘겹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강남서초지부,
민족문제연구소 강남서초지부, 함께하는시민모임, 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 등과 함께
연대를 꾀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 강남촛불은 이들 단체와 함께
야권 단일화 후보 만들기에 참여했다.
강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들은 연대를 통해 보수적인 강남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강남서초지부 김영란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강남에서 활동하는 진보 정당이나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가 너무 적었다.
대부분 구청과 연계해 활동하는 보수적인 단체만 있었다"면서
"이번에 우리는 교육감 선거에 많이 결합했다.
 
공정택 전 교육감의 부패로 인해 보수적 후보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남의 정서를 읽고 진보적인 교육감 후보를 알리는 것이 좋은 효과를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진보적인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강남 주민이 원하는 것을 함께하는
밑바닥 운동이 꾸준하게 지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강남서초지부 손영주 지부장은 "지부가 만들어진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연구소 회원 가운데 강남 지역에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지부를 만들었다"면서
"강남 사람들이 보수 후보만 찍는다고 비판할 게 아니라 진보 진영 세력이 뭉쳐서
힘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