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2017-01-06 22:22:06
지난해 12월 30일, 일본 국기가 올려다 보이는 부산시 동구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재설치 되어 있다. 소녀상에 꽃다발을 전하고 있는 시민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주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 일본 정부가 유례없이 당당한 태도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면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의 이면합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6일 일본 정부는 ‘부산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면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총영사를 본국으로 일시 환국시키고,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와 통화스와프 협상도 중단을 선언하는 등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같이 구체적이고 강력하게 항의 조치를 취한 적은 해방 이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동안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서 피해자인 한국이 가해자인 일본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던 입장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이 흡사 ‘을(乙)’이 된 것 같이 보일 정도다.
일본이 전과 다르게 과거사 문제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 간 체결했던 ‘위안부’ 합의 때문이다.
스기야마 신스케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 전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을 만나
“재작년 한일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으로 해결하기로 양국이 확인했지만
이런 일은 합의의 기초를 한국 측이 일방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도저히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부산 소녀상’ 설치가 ‘위안부’ 합의 파기와 다름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앞서 지난 2015년 ‘위안부’ 합의 체결 직후 열린 한일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일본 정부로부터 10억엔(약 100억원)을 받는 대가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기로 이면합의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합의 직후 대학생들이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모여 노숙까지 하면서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는다는 확답을 하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정부는 그 짧은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해 9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직접 소녀상 철거 요구를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면합의는 없다. 일본의 언론플레이에 말려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면합의 의혹을 일본의 언론플레이로만 치부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일본공관 앞에 또 ‘소녀상’이 세워진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서 ‘위안부’ 합의 속에 소녀상 철거 혹은 추가설치 제재 등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이면합의가 있다는 것이 방증된 셈이다.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국제회의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내용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위안부’ 합의 이후 뒤바뀐 한일관계...“이면합의가 입증된 셈”
실제로 합의를 기점으로부터 한일관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듯한 입장을 보였다.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에 사죄를 표명한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합의 이후
오히려 ‘합의 이행’을 강조면서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고,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부인하는 등
일본의 태도는 이전과 다르게 당당해졌다.
반면, 한국 정부는 합의 이후 일본의 계속되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망언이나
소녀상 철거 요구에 대해 제대로 된 항의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의 조치에 대해 일본대사를 초치했지만 유감을 표명하면서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해 나간다”는 입장을 재확인 했을 뿐이다.
앞서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한 일본 외무성의 항의에도 정부는
“외교공관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禮讓)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관련 당사자들이 이러한 점을 고려해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일본의 요청대로 소녀상을 이전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정부의 주장대로 소녀상과 관련한 이면합의가 없었다면
합의 이행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의 정신을 왜곡하는 것은 일본 정부’라고 항의했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일본에 합의에 대해 한마디 항의도 하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은 이면합의에 대한 국민들의 심증을 굳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이날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잘못은 일본이 했는데 한국이 왜 빚을 진 것처럼 행동해야 하느냐. 박근혜 정부는 무슨 꼬투리를 잡힌 것이냐”고 지적했다.
윤 대표는 “일본 정부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당연한데 오히려 한국이 채무자가 되어버렸다”며
“한국정부는 한일합의에서 소녀상 철거 내용은 없다고 했지만 이번 일본의 태도를 보면
정부가 국민에게 사기를 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했지만 번번이 부인해왔던 ‘위안부’ 합의에 이면합의가 존재했음이 증명된 셈”이라며
“외교부는 이제라도 이면합의가 무엇인지 솔직히 고백하고, 합의 폐기를 천명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압박을 가하는 데 대해
“‘위안부’ 합의에 착실한 이행을 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