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7 23:01:05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왕실장’이라고 불렸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비위가 드러났다.
김 전 실장이 언론과 사회단체, 사법부를 종횡하면서 어떻게 총체적인 공작을 펼쳐왔는지,
그가 통합진보당, 전교조 등 정권의 반대세력에 대해 얼마나 집요하게 공격했는지가 드러난 것이다.
시국을 뜨겁게 만든 최순실 게이트에 비하면 여러모로 ‘덜 재미나지만’, 죄질을 따진다면 오히려 더 심각한 범죄들이다.
김 전 실장은 7일 청문회에 출석해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서 오늘 날에 이런 사태가 된 데 대해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망록에 드러난 그의 인식을 보면 그는 결코 대통령을 잘못 보필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는 김 전 실장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실장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그림에 대해 ‘응징’을 거론하며
“(비판적인 예술가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추적하여 처단해야”하고,
정보를 수집해 “경찰, 국정원을”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의 지시라는 표시와 함께
“세월호 인양, 시신 인양X, 정부책임 부담”이라고 적혀있다.
그가 청와대의 회의 석상에서 세월호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통합진보당과 전교조는 그에게는 ‘2대 과제’였고, 이런 과제를 풀기 위해서
“이념 대결 속에서 생활, 갈등 속에서 전사적 자세 지니도록” 부하들을 독려했다.
유신과 5.16쿠데타에 대해서도 그의 인식은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5.16은 박정희의 “구국의 일념”으로 발생한 사건이었고,
유신은 “월남 패망 직전, 체제 경쟁, 카터 행정부 미군철수, 북한도 헌법을 개정”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늘 5.16과 유신에 대한 공직자들의 입장을 묻는다.
대개는 쿠데타와 독재라는 통념을 벗어나지 않는 답변을 하는데,
그들을 발탁한 김 전 실장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마 장관을 하기 위해서 그런 거짓말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좌파’와의 대결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이나 공작 따위는 그에게 어떤 도덕적 부담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청문회에 나와 취한 태도도 여전하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하면 그는 ‘모른다’고 잡아뗐다.
최순실의 존재도 몰랐고,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거짓말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
음습한 공작을 펼치면서도 자신이 애국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
이날 청문회에서 김경진 의원은 김 전 실장에게 “죽어서 천당을 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해야 한다.
김 전 실장과 같은 사람이 활개를 치고 있는 이 땅이 바로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