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6 19:01:21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초청 오찬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간담회를 갖고
"파견법은 구조조정의 대책이 될 수 있다"면서 국회에서 파견법 처리를 전향적으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용접, 주조, 금형 등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 확대와 중고령자 파견 전면 확대를 골자로 하는
파견법 개정안은 저임금에 고용도 불안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으로,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을 위한 올바른 실업대책이 될 수 없다.
야당에선 당장 "박 대통령의 발언은 넌센스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중간착취 확대가 실업대책?
박 대통령은 "구조조정을 하면 거기서 파생되는 실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구조조정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한 방안이) 노동개혁법에 다 있는데 그게 (국회에서 통과가) 안 돼서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특히, 파견법에 대해서는 "노동개혁법 중에서 파견법을 자꾸 빼자고 그러는데 파견법이야말로 일석사조쯤 된다.
왜냐면 구조조정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실업자들이 파견법을 통해서 빨리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파견법만 통과되면 한 9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파견법이) 구조조정의 대책도 되고, 중장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고
구인난을 겪는 중소기업을 위한 것도 된다"면서 "국회에서 전향적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파견 확대가 실업대책이 될 수 있다는 박 대통령의 주장은 한 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생애 주요 일자리에서 해고된 노동자에게 앞으로는 중간착취를 당하면서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불안을 늘 안고 살라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괜한 과장이 아니라 파견 일자리의 현실이 그렇다.
파견노동자들과 시민사회, 정당 의원들이 박근혜 4대 노동법-2대지침 페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안산 반월공단, 인천 남동공단 등에 만연한 제조업 불법파견 일자리를 보면,
이곳에서 일하는 상당수의 파견 노동자들은 최저시급을 받고 4대보험 적용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원청의 물량이 줄어들면 출근 전 날 전화 한통으로 해고(계약해지)되는 일도 있다.
파견 확대는 불법을 단속해야 할 정부가 단속엔 손 놓고 불법을 합법화 해 주겠다는 것이다.
파견은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중간착취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현행법상 제조업엔 파견이 금지돼 있는데 공단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파견 노동을 쓰고 있는 건,
물량 증가 등 '일시 간헐적 사유가 있는 경우 최대 6개월까지' 파견 노동을 쓸 수 있다는 예외 조항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를 파고들어 파견을 6개월 이상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상시·지속적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하려는 뿌리산업 파견 허용은 이런 불법을 단속할 생각은 안 하고 '합법화'해주겠다는 것이다.
파견의 확대가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현재 대부분의 파견 노동자들은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 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는 부천의 제조업체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하던
20대 노동자들이 보호장구도 갖추지 않고 일하다 실명을 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공부문 다 팔면 경제 사나?
박 대통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 대통령은 "서비스산업발전법만 통과돼도 기업들이 투자를 34%나 늘리겠다고 얘기를 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세금을 올리니 내리니 안 해도 우리 경제를 살려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공공부문 민영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법안이다.
야당과 보건의료계에서는 이 법안은 궁극적으로 의료 민영화를 노리고 있는 법안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의료민영화법이라는 건 괴담"이라고 반박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의료 영리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는 사실과 함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야당과 보건의료계의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은 공공민영화법"ⓒ김철수 기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기획재정부에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에서 5년마다 정부에서 수립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계획을 심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위원회의 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는다.
그리고 이 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서비스산업은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이다.
그리고 이 법은 다른 법률에 우선하도록 돼 있다.
의료, 교육, 철도, 가스, 금융, 물류, 방송통신, 문화관광 등 모든 사회 공공서비스도 이 법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는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가 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공공영역 규제완화와 민영화에 나설 수 있도록 전권을 주는 법안이다.
의료법 개정을 통한 의료 영리화는 국회의 문턱을 넘기 어렵자,
정부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으로 영리 목적 의료 자회사 설립 등을 허용했던
박근혜 정부가 이 법안 통과 후 어떤 행보에 나설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