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브리핑] 무릎팍도사는 가고..
JTBC 손석희 입력 2015.12.14. 21:33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남에게 화내본 적이 없다. 나 자신에게만 화를 낸다."
"직원에게 존대한다. CEO는 높은 사람이 아니라 역할이 다른 사람일 뿐이다."
"군에 입대해서야 가족에게 입대했다고 알렸다."
누구의 어록일까요.
돌이켜보면 안철수의 등장은 적어도 대중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2009년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와 함께였습니다.
보통사람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듯하여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했던 사람.
그가 열었던 토크 콘서트는 체육관의 의자가 다 차고, 계단이 차고, 복도가 차고,
나중엔 무대마저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그 신선함은 2011년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면서 절정에 달하지요.
그의 지지율은 50%를 넘었으나, 5%의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물러났던 대선에서의 양보는 어찌 보면 지금 결별의 씨앗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재인 후보와의 공동유세는 흔쾌해 보이지 않았고,
선거 당일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도 그 양보가 마뜩치 않았던 심경을 내보인 것이라고 대중은 해석했습니다.
이후 정당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온 그는 여전히 새로운 정치를 외쳤지요.
그러나 좋게 말해 계파 정치요, 나쁘게 말하면 패거리 정치를 혁신하자는 그의 외침은
적어도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먹혀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는 다시 광야에 섰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퇴행적 패거리인지 아닌지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떠나갈 사람들이 그 패거리 문화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인지 역시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또다시 '철수'하여 벌판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우리 정치판은 그 척박함 때문에 늘 새로운 인물을 갈구했지만
또한 그만큼 쉽게 묻어버리기도 해왔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거듭날 것인가. 묻혀버릴 것인가.
6년 전 '무릎팍도사'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직업이 많은데, 내 평생 직업은 무엇일까요."
'무릎팍도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벤처 CEO가 됐기에 대한민국이 백신을 보유할 수 있었고,
교수님이 되었기에 이 나라 젊은이들이 도전과 기업가 정신을 배웠듯,
직업이 바뀔수록 대한민국은 윤택해질 겁니다. 가능하면 많이 직업을 바꾸세요!"
무릎팍도사가 시켜서 그랬던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는 그 이후 직업을 정치인으로 바꿨습니다.
도사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이 더 윤택해졌는지는, 혹은 앞으로 더 윤택해질지는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겠지요.
지금은 그의 앞날을 명쾌하게 예측하고 풀어줄 무릎팍도사도 가고 없으니 오롯이 그가 풀어야 할 숙제인 셈입니다.
오늘(14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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