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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에게 경의를'

또바기1957 2015. 10. 16. 10:48

앵커브리핑]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에게 경의를'
영상뉴스입니다.영상뉴스입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이어가겠습니다.

육교. 1960년대부터 생겨나 도시를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가 됐습니다.

과거엔 선진도시의 상징이었다지만 세상이 달라지면서 육교는

오히려 도시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달라진 세상과 발맞춰 땅과 땅을 이어주던 육교는

하나둘 빠르게 자취를 감추는 중입니다.

1980년도에 지어진 노량진 육교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모레(17일)부터 철거작업이 예고돼 있습니다.

"노량진에서 한강은 유속을 잃고 고여서 기신거렸다.

밤에는 검은 물이 기름처럼 번들거렸고 그 위에 한강철교의 불빛이 떠 있었다" -김훈 '영자'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전동차가 멈추면 수많은 이들을 쏟아내는 그곳은

섬은 아니되 도시 속 섬처럼 떠있는 곳입니다.

70년대 말. 도심부적합 시설로 분류된 학원가가 즐비하게 들어서면서

이곳은 도전하는 청춘들이 모여드는 '섬'이 됐습니다.

노량진역을 나와 학원가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육교를 거쳐야 했고,

폭 4미터, 길이 30미터의 이 땅 위의 다리는 그야말로 유일한 통행로였습니다.

다리 너머는 시험에 합격해야 갈수 있는 장소. '속세'라고 불렸다지요.

그렇게 어찌 보면 비루한 젊음의 기억을 품은 그 육교가 사라진다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의아했습니다.

낡은 육교와의 결별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

그 바닥엔 무엇이 가라앉아 있을까요.

"내 젊은 날이 살아 숨 쉬었던 곳"

한때 이곳에서 공부했던 한 공무원의 말입니다.

강 건너로 여의도 불꽃놀이가 보이던 육교를 건널 때면

"나만 빼고 모두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에 참담하기도 했을 그들은

모두 이곳에서 가장 빛나던 젊은 시절을 통과했습니다.

그 결과가 성공이었든 그렇지 못했든,

모두가 힘들었기에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던 작은 도시.

앞으로 앞으로 도전하려 했던,

어찌 보면 무모했을 그 시절의 나를 잊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들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한발 한발 힘겹게 오르내리던 육교. 속세로 향하는 그 다리가 사라지면

그리고 편리한 횡단보도가 만들어지면 이른바 속세로 가는 길도,

살아가는 일도 그만큼 쉬워질까요?

계단을 오르내리던 한 시민은 이틀 뒤면 사라질 오래된 육교 위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에게 경의를…"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http://news.jtbc.joins.com/html/027/NB11062027.html
손석희 앵커 / 보도담당 사장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치우치지 않겠습니다. 귀담아 듣겠습니다.

 

그리고 당신 편에 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