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의 전쟁' 주인공 권희로씨 별세 |
재일 한국인 차별 폭로로 일본 사회 충격 빠뜨려, 수감 중 인권운동으로 주목 받기도 |
부산CBS 강동수 기자
![]() 지난 1960년대 이른바 '김희로 사건'으로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재일교포 2세 권희로씨가 우리나라에 영주 귀국한지 11년 만에 지병으로 명을 달리했다. 권희로씨는 26일 오전 6시 50분쯤 부산 동래구 봉생병원에서 전립선암 투병중 끝내 숨졌다. 권 씨는 지난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야쿠자 2명을 총으로 살해한 뒤, 인근 하이바라군의 한 여관으로 도주해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88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극을 벌인 이른바 '김희로 사건'의 주인공이다. 당시 그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과 야쿠자의 고리대에 시달리던 끝에 야쿠자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여관 인질극을 벌일 때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권 씨는 1999년 9월 7일 우리나라 종교인들의 석방운동으로 가석방되기까지 근 30년의 세월을 일본 최장기수로 살아야 했다. 오랜 수감 생활 가운데서도 권 씨는 부산 소년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5만엔 씩을 기탁하는 등의 사회활동으로 주목받았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을 부르짖은 권 씨의 항거는 당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갔으며, 일본 언론인이 쓴 '김희로, 나의 전쟁'을 비롯해 일본과 한국에서 '김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두차례나 영화화되는 등 사회적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고향 부산으로 영주 귀국한 뒤 노년의 삶을 정리하려 했던 권 씨는 옥중 결혼했던 배우자가 자신의 재산을 챙겨 2차례나 잠적하는가 하면, 내연녀와의 불화 끝에 살인미수와 방화혐의로 구속되는 등 고국에서의 말로 조차 평탄하지 못했다. 81살 굴곡진 생을 살다간 권 씨는 자신의 귀국을 도와준 지인에게 시신을 화장해 유골의 반은 선친의 고향인 부산 영도 앞바다에 뿌려주고, 반은 시즈오카현 어머니 묘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권 씨는 태어난지 3년만에 아버지(권명술)를 여의자,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새아버지(김종석)의 성을 물려받아 김희로로 살아왔으며, 지난 1999년 가석방과 함께 귀국한 뒤 친아버지의 성(姓)을 되찾아 권희로로 이름을 바꿨다. angeldsk@c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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