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DATE 09-12-1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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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악법도 법’임을 믿으며 법체계에 특별한 토를 달지 않고 복종한다. 모든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최소한의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거짓을 말할 때 법은 결코 만인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드레퓌스 사건이다.
프랑스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유태계 대위 드레퓌스가 독일 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사건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증거는 독일 대사관에서 몰래 훔쳐온 정보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것 외에 전혀 없었다.
프랑스 참모본부는 그를 스파이로 만들기 위해 불법적인 절차를 마다하지 않았다. 허위와 조작 속에 드레퓌스는 만장일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결백을 주장하던 드레퓌스는 결국 악마의 섬으로 유배당했다.
그로부터 2년뒤, 프랑스군의 정보장교가 우연찮게 진짜 스파이를 찾아내게 냈다. 그러나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기 싫었던 당국은 진범을 찾아낸 이 마저도 군사기밀 누출죄로 체포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언론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사인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논설이다. 에밀졸라는 논설에서 사건의 진상과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 군부의 음모를 조목조목 폭로하며 이 사건의 재심을 요구했다.
에밀 졸라의 글은 프랑스 시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프랑스는 ‘정의와 진실과 인권’을 주장하는 드레퓌스파와 ‘군부의 명예와 국가질서’를 내세우는 반 드레퓌스파로 분열됐다.
양심적 지식인들의 법정투쟁은 결국 사건 발생 8년만에 드레퓌스의 무죄를 이끌었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권력자들은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혐의를 날조하는 정치공작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법은 저울을 잃은 채 법집행자의 손에서 농락당했고 진실은 거짓의 대변자인 언론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때문에 드레퓌스 사건은 파시즘 정권에 의해 부당하게 개인의 권리와 진실이 희생당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된다. 파시즘적 정권이 공작정치와 언론플레이를 통해 진실을 호도하고 개인의 인권을 억압할 때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한다. 또한 이러한 행태에 맞서 싸워 진실이 승리했을 때도 드레퓌스 사건에 빗대어 얘기한다.
2009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요즘,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다. 사건은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에서 시작했다. 기사는 ‘중앙지검 특수2부가 2007년 무렵 수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수사중’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내년 6월에 열릴 지방선거에서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철의 여인’에게 이명박 정부가 칼을 겨눈 셈이다.
여론은 검찰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선거구도를 흔들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내어 놓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공작정치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 드레퓌스 사건이 남긴 소중한 교훈이다. 당시에도 대부분의 언론은 부패한 권력의 편에 서서 ‘거짓을 옹호하는 글’로 여론을 호도했다. 그러나 종국에 부패한 권력에게서 진실을 뺏어온 것은 ‘진실을 담은 글’이었다. 2009년 봄, 대한민국은 정치보복의 제물로 노무현 대통령을 잃어야만 했다. 그런데 1년이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제물을 내어놓으라 한다.
1898년 프랑스의 에밀졸라가 ‘나는 고발한다’고 외쳤다면 2009년 공작정치에 반대하는 대한민국의 에밀졸라들은 ‘두번은 당하지 않는다’라고 외치고 있다.
아무리 역사는 돌고 도는 거라지만 1898년 프랑스에 일어났던 일들이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는게 우습기 그지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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