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거 (19)]/˚♡카툰·만평·유머

三國地 의 眞悉

또바기1957 2008. 5. 2. 18:34

삼국지(三國地)란 중국 기전체 역사서의 하나로서..

 

위(魏)·촉(蜀)·오(吳)의 3국이 정립한 시기부터

진(晉:220~280)이 중국을 통일한 시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했다.

서진시대에 진수 (陳壽:233~297)가 지었다.

 

★ 여기서 잠시 진수가 누구인가..?

(광주 수창 초등학교 다닐 때 울 형님 친구였던 기억이 나는데,아님말고)

 

삼국지 三國志 의 저자이다.

자는 승조(承祚). 파서(巴西) 안한(安漢:지금의 쓰촨 성[四川省] 난충 시[南充市] 북쪽)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초주(譙周)에게 사사받았다.

 

촉한(蜀漢)에서 관각영사(觀閣令史)라는 벼슬을 지냈으나, 환관 황호(黃皓)의 미움을 받아

여러 차례 핍박을 받았다.

 

서진 때도 벼슬길에 많은 장애를 받았지만 장화(張華)에게 인정받아

좌저작랑(佐著作郞)·양평령(陽平令)을 역임했다.

 

이후 저작랑·파서군중정(巴西郡中正)을 거쳐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를 지냈다.

진이 오(吳)를 멸한 뒤에 삼국시대의 저작을 모아 〈삼국지〉를 저술했다.

〈삼국지〉는 후대 문헌 중 특히 소설과 희곡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밖에 〈고국지 古國志〉·〈익도기구전 益都耆舊傳〉·〈촉상제갈량집 蜀相諸葛亮集〉을

편찬했으나 모두 망실되었다.

 

총 65권으로 〈위서 魏書〉·〈촉서 蜀書〉·〈오서 吳書〉의 3서로 구성되어 있다.

위나라를 정통으로 하여 〈위서〉에 기(紀)·전(傳)을 두고, 〈촉서〉·〈오서〉에는

열전(列傳)만 두었으며, 모두 표(表)와 지(志)는 없다.

 

〈삼국지〉는 단대사(斷代史)를 나라별로 저술하여 사체(史體)의 새로운 형식을 열었다.

왕침(王沈)의 〈위서〉, 위소(韋昭)의 〈오서〉, 어환(魚豢)의 〈위략 魏略〉을

참고로 하여 편찬했으며, 복잡하고 모순된 3국의 역사를

간결한 문체로 일목요연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너무 간략하게 사실을 기록하여 빠진 부분이 많다.

남조 송나라 때 배송지(裴松之:372~451)가 본서의 간략함을 보충하기 위해

많은 책을 참조하여 상세한 주(注)를 달았는데,

이미 없어진 많은 자료를 인용했기 때문에 삼국시대 연구의 귀중한 문헌으로 평가된다.

 

청대에도 많은 학자들이 〈삼국지〉에 보주(補注)와 보표(補表)를 달았다.

근대에 기존의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노필(盧弼)이 〈삼국지집해 三國志集解〉를 저술했다.

 

그러다 21 세기 초 "예산일기" 라는 수필을 집필 하던 또아무개의 "빛나는 꼴통"에 의해

眞悉(진실)이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또 아무개는 최치원의 "열하일기" 그리고 이순신의 "난중일기" 의 뒤 를 이어

전체 역사상 길이 남을 대작 "예산일기" 를 집필 하였으며 "주옥"과 같은 작품을 무수하게

생산 해내고 있다.

 

또한 차기 노벨문학상 수상 이라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꿈을 꾸며

수상시 소감 인터뷰에서 버벅 거리지 않기 위하여

하루 16 시간씩 수상소감을 맹 연습 하던중 문득 삼국지 소식을 접하고

삼국지는 어느 누구의 일기를 누군가 뚜룩쳐 보았기 때문에 만들어졌지 않았을까

고민 하던중 당사자들의 (삼국지에 출현 하는 인물들) 중 대표적인 인물 세사람의

일기를 분석 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추신:어디가서 함부로 사용 하지 마시라..잘못했다간 마져디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