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14일 연세대 특강에 나섰다.
같은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주선해 마련된 이 강의는 사전 공지도 없이 급작스럽게 이뤄진 것이다.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연희관 사회학과 강의실에서 진행된 특강에서 홍 대표는
"(캠퍼스에) 들어올 때 '나가라!' 그러고 플래카드 걸고 그럴까 싶어서 전격적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저는 고대 법대를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홍 대표는
"저희 당에 대한 문제나 한국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 등 모든 방면에 대한 질문을 해주면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해드리겠다"며 곧바로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순서를 시작했다.
"촌년이 출세했다" 여성비하 발언 지적에
창녕 출신 홍준표 "그럼 '촌놈'이라고 하면 남성비하냐!" 발끈
'돼지발정제' 논란에도 "나한테 덮어씌운 것" "책 다시 보고 오라" 타박
학생들은 작심한 듯 홍 대표의 평소 언행이나 정책적인 메시지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첫 질문에 나선 학생은 홍 대표가 얼마 전 자신의 부인을 향해 '촌년' 발언을 한 일을 거론하며
"자유한국당이 당을 혁신하겠다면, 남성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여성을 여성으로 대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어떻게 한 당의 대표가 아무렇지 않게 여성 비하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앞서 홍 대표는 지난달 31일 전북 부안을 찾아 부인 이순삼 씨를 소개하면서
"촌년이 출세했다. 줄포 촌년이 정말 출세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부안 줄포는 이순삼 씨의 고향이다.
이 학생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홍 대표가 대학 시절 성범죄 모의에 가담한 사실이
자서전을 통해 드러난 이른바 '돼지발정제 사건'을 언급하며
"여성이 인구의 절반인데 왜 자꾸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그는 동성애자·양성애자 등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자가 설거지를 왜 하느냐",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는 것" 등
홍 대표의 왜곡된 성적 가치관이 반영된 과거 발언들에 대한 일침이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과 학생들을 상대로
류석춘 혁신위원장(연세대 교수)이 마련한 특강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질문을 받은 홍 대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처음부터 가장 아픈 부분을 질문해줘서 고맙다"며 답변을 시작했다.
그는 "경상도 말투가 좀 투박스럽다"며 "내가 우리 집사람 고향에 가서 '줄포 촌년'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여성 비하라고 한다. 그럼 제가 '창녕 촌놈'이라고 하면 그건 남성비하냐"고 발끈했다.
이에 학생이 반박에 나서려 하자 홍 대표는 "가만 있어봐!"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는 "경상도에서는 그걸 여성비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친근한 말이다"라며
"'창녕 촌놈'도 똑같은 말 아니냐"고 강변했다.
홍 대표는 '돼지발정제 사건'에 대해서도
"내가 (범행을) 한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말리지 못한 것"이라며
"그런데 그걸 앞 뒤 전부 빼버리고 나한테 덮어씌웠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책 내용을 다시 보고 나서도 홍준표가 잘못했다고 생각되면 그때 다시 질문해달라"고 타박했다.
'전략핵-전술핵 균형'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전술핵 많이 배치하면 된다"는 홍준표
자신을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소개한 한 학생은
홍 대표의 지론인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공포의 균형' 주장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술핵이 결국 재래식 소규모 핵무기임을 지적하며
전략적 성격을 갖는 북한의 핵무기와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의문을 표시했다.
이어 "평양이 바로 몇 킬로미터 앞이다.
평양 순안에서 미사일 하나 쏘면 바로 맞는데 핵균형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취지의 송곳 질문을 던졌다.
'인도-파키스탄 국경분쟁'을 '핵균형'으로 해결했다는 홍 대표의 주장에 대한 반박성 질문이었다.
홍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럼 학생은 핵을 안 가지면 어떤 방책이 있다는 거냐"였다.
이에 학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건 지금 제가 묻고 있는 거잖아요"라고 따졌고,
홍 대표는 "그러니까 북핵을 억제하는 방식이 뭐가 있냐는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학생은 지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럼 핵을 가져서 영구적인 공포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냐"고 재차 질문했다.
그러자 홍 대표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하는 평화협정을 맺고 2년 뒤에 (남베트남이) 공산화됐다"며
"핵을 가진 나라와 가지지 않은 나라는 게임이 되지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전략핵과 전술핵의 균형 문제에 대한 지적에는 "전술핵의 개수 문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류석춘 혁신위원장(연세대 교수)이
마련한 특강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홍준표, '핵무장론' 설파하다 '한미동맹' 부정?
전술핵-핵무장 사이에서 한미동맹 '뗐다 붙였다' 하는 홍준표
학생들과의 계속되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홍 대표는 '전술핵 재배치' 뿐만 아니라 '핵무장론'까지 꺼내들더니 결국 모순된 인식 수준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하다가도,
핵무장까지 나설 수 있다고 말할 때는 '미국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겠냐'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양립할 수 없는 비현실적 주장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 없이 무의식적으로 쏟아내다가 벌어진 촌극이다.
홍 대표는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좌파들이 얘기하는대로 평화협정 체결하자? 그럼 제일 먼저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이) 환수한다"고 말했다.
남북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한미동맹이 와해돼 베트남의 전철을 밟게 된다는 논리다.
이어 "스스로 독립해서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나라가 세계에 몇 개국이나 되느냐"며
"미국·러시아·중국 외에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지킬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홍 대표는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까지 거론하며 '한미동맹 무용론'을 시사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을 위협하기 위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며 "
과연 미국이 LA나 뉴욕을 핵으로 폭격당할 것을 알면서도 (한국을 위해) 참전할 수 있겠느냐. 못한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우리가 왜 핵을 가져야 하나. 살기 위해 가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평화를 외칠 수 있다"며
"(미국의) 핵우산에만 기대서는 한반도가 안정을 취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고로,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고수하고 있는 정책방향 1순위는 '핵 비확산'이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미 전략자산을 동원, 한미(일)연합전력 구축을 통해 연쇄적인 핵군비 확장을 막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 모든 것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 대표는 공개적인 강의에서 자신의 '북핵 대응' 논리 전개를 위해,
'한미동맹'에 대한 아전인수 해석을 동원한 것이다.
대학생들의 수준 높은 질문 앞에 홍 대표가 현실감각이 전무한 인식 수준을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은 1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홍 대표는 강의실을 나가면서 "여러분들이 좀 세상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보고 판단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줬으면 참 좋겠다. 저희 당이 싫더라도 좋아하려고 노력 좀 해달라"고 당부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류석춘 혁신위원장(연세대 교수)이 마련한 특강을 위해서 강의실로 입장하고 있다.ⓒ정의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