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17일, 노무현 대통령은 65일 만에…양심수 석방의 역사 [8.15 특별기획①] 감옥에 갇힌 민주주의 ‘양심수’ “양심수 석방, 죄를 부당하게 뒤집어쓴 사람들 원상회복 조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양심수들에 대한 사면 조치는 대대적으로 단행됐다. 사면은 국가원수의 특권으로 형 선고 효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키는 제도다. 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형 선고 자체를 소멸시켜주는 일반사면과 형을 선고받은 사람 가운데 대통령이 특정인을 지정해 실시하는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특 별사면은 국무회의 심의만 거치면 돼 대통령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다. 양심수 사면은 특별사면에 해당한다. 보통 광복절, 설 명절 등을 계기로 사면을 단행하지만, 대통령이 일정을 앞당기기도 했다. 양심수에 대한 사면 조치는 재벌이나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사면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양심수에 대한 사면 조치는)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 실정법을 어겼지만, 그 적용 법규 자체가 헌법 정신, 세계인권선언 등에 배치되거나 법 집행자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른 부당한 집행,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보복과 이념적 편견 등으로 죄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원상회복시키는 행위"라며 "권력자가 범죄자에게 베푸는 은전이 아니"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측은 8·15 양심수 석방과 관련해 "특별사면을 준비하려면 3개월 이상이 소요돼 일단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과거의 관례를 보면 정권 출범 후 3개월 이전에도 폭넓은 조치가 이뤄졌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민혁당 사건에 연루된 하영옥 씨나 영남위원회 사건의 박경순 씨를 석방하는 등 취임 65일 만에 1424명의 양심수를 특별사면·복권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 문제는 지난날 깊게 파인 사회적 갈등의 여진이 남아있는 것으로, 사회적 통합도 중요한 가치인만큼 이를 적절히 조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단과대학 학생회장 이상이면 자동으로 한총련 대의원이 되는데, 그것만으로 수배 대상이 된다니 이는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밝힌 것이 나온다. 실제 손준혁 6기 의장이 석방되는 등 다수의 한총련 간부들이 사면됐다. 당시 의원이었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수배 해제까지 얽혀 있었던 한총련 문제와 관련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노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취임 후 단 17일 만에 양심수들을 석방했다. 당초 김대중 정부의 취임 후 첫 특별사면은 5월 14일 부처님 오신 날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취임 직후인 3월 1일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박지원 의원은 "국민 대 화합 차원에서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앞당기기로 했다"고 밝혔고, 13일 밀입북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소설가 황석영 씨나 서경원 전 의원 등 양심수 74명을 석방했다. 골수암으로 투병 중인 신인영(당시 68)씨 등 고령의 비전향 장기수 7명도 석방됐으며, 강희남 목사나 진관스님도 석방조치됐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1993년 취임 후 10일 만에 전격적으로 석방 조치가 이뤄졌다. 당시 기사를 보면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영삼 대통령이) 남민전 사건 등 구 정권 아래서 발생한 시국사건의 관련자들을 전원 석방, 사면, 복권시킬 것을 지시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방북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문익환 목사나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관련자, 동의대 방화사건 관련자 등 5800여 명의 양심수에 대한 특별사면·복권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노태우 씨도 취임 후 이틀만인 1988년 2월 27일 양심수 1600여 명을 특별사면·복권 조치했다. 당시 정부도 3월 1일을 기해 사면 조치를 단행할 예정이었으나 제6공화국 출범 기념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겼다고 한다. 다산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됐던 이범 백산서당 대표, 민정당 연수원 방화사건의 최창원, 김의겸, 고명석 씨가 석방됐으며, 민통련의 이부영 전 의원이나 미 문화원 방화사건 배후로 지목돼 투옥됐던 김민석 전 의원 등도 복권 등의 혜택을 받았다. 4.19 시위 사건의 김병걸 씨, 청계피복노조 사건의 민종덕 씨도 복권됐으며, 부산 미문화원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문부식 전 진보신당 대변인은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문 전 대변인은 이후 1988년 12월 석방됐다. 전두환 씨도 취임 당일인 1981년 3월 3일 5.18 항쟁 관련자 307명, 부마항쟁 관련자 15명 등에 대해 사면·복권 등의 조치를 취했던 것을 감안하면, 군 사독재 하에서도 양심수 석방은 이뤄진 셈이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씨의 경우 취임 직후는 물론 재임 기간 내내 양심수들에 대한 석방 등의 조치는 없었다.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가 서울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양심수 없는 나라로 - 동행 선포식을 갖기 위해 이동 중 경찰이 분수대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있다.ⓒ민중의소리 보수진영의 '색깔' 공세를 뚫은 전 대통령들 정권이 취임 이후 대대적인 양심수 석방을 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토론회에서 "우리가 집권한다면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 조국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람들을 석방, 사면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발언이 나오자 신한국당(현 자유한국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공안사범 석방으로 우리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거나 "결국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석방하겠다는 것"이라고 색깔 공세를 펼쳤다. 공세 속에서 사노맹 사건의 시인 박노해 씨와 백태웅 씨가 첫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적단체로 낙인찍힌 한총련 간부 전부를 사면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첫 사면에서 민혁당 사건 연루자를 석방하는 등 보수진영의 색깔 공세를 뚫고 국가보안법 위반 투옥자들을 다수 사면·복권하는 의지를 보였다. 때문에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단체들은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씨의 200만 명, 이명박 전 대통령의 280만 명 사면·복권 등은 모두 민생사범, 교통법규 위반자 등 일반 사범까지 확대해서 실시했을 뿐 아니라, 면허 취소 복권 등 행정 처분의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며 "통상 3개월이 넘게 걸리는 사면 절차는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65일 만에 양심수를 석방할 수 있었던 것은 대상이 양심수에 국한되는 등 석방 사유가 명확했기 때문"이라며 "양심수 특별사면은 시혜를 베풀어달라는 것이 아닌 새 시대를 위한 결단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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