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2 08:16:47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일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한 몸 불살라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이 말이 대선 출마 의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선 출마’라는 네 글자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출마선언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반 총장의 임기는 올해로 끝난다.
그 이후 대선에 나올지 말지는 그의 선택이다.
하지만 10년 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적어도 자신의 정치행보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반 총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박 진영의 대선 후보로 손꼽혔다.
친박의 러브콜에 반 총장 스스로도 별로 사양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지원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위안부’ 협상 직후 반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며,
노골적인 찬사를 보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국내 여론이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반 총장으로서는 최대한의 측면 지원을 한 셈이다.
또 반 총장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며 새마을운동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반 총장의 잇따른 박근혜 칭송은 누가 봐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의례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친박을 등에 업고 대선 출마를 저울질 하던 반 총장은 탄핵 정국이 시작되자 변신했다.
지난 16일 뉴욕 외교협회 연설에서 반 총장은 “국가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배신당했다”고 말했다.
20일 기자회견에서는 “사회적 적폐가 쌓여 있다”고도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반 총장의 입장은 모호하지만 그동안 ‘박반연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까웠던 박근혜 대통령과 이제 와서 거리를 두려 애쓰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반 총장이 박근혜 정권과 선긋기를 하고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자
새누리당을 깨고 나오는 비박 진영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반 총장이 국민의당에 합류해 경선을 치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얼핏 반 총장의 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어느 길로 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반 총장은 자기 소신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 총장이 촛불 민심에 역행해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대선 행보를 시작하기 전에 친박 행보부터 반성해야 한다.
반 총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던 한일 ‘위안부’ 합의 또한
박근혜 정권이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저질렀던 대표적인 사례이며, 적폐 중의 적폐이다.
촛불 민심은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을 거슬러
독단적으로 추진되었던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어제 박근혜를 칭송하던 입으로 아무런 해명없이
오늘 말을 바꾼다면 스스로의 기회주의만 인증하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