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2016-11-09 07:35:08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를 방문해 야당이 제안해온 국회추천 총리 임명을 수용했다.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총리를 추천하면 그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제1야당인 더민주는 2선 후퇴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없는 점,
내각을 통할해 나간다는 말이 모호하여 실제 총리가 국정운영권이 있는 것인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들어
제안을 일단 거부한 상태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않고 조건을 붙이는 태도로 보아 협상의 여지가 있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8일의 국회 기류만 보면 대통령 권한의 축소범위와 총리 권한의 확대규모를 놓고
청와대와 여야가 물밑협상이라도 벌일 분위기다.
대통령의 “국회추천”이라는 말 한마디에 ‘누가 적임자냐’, ‘어디서 어떻게 선출하냐’ 수군대는 소리도 컸다.
성급한 언론들은 손학규,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가 총리 물망에 올랐다는 기사들을 앞다퉈 내보내고,
SNS상에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총리로 추대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국회가 지명한 총리에 대해 조각권, 실제 국정 운영권을 주는지,
청와대는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 추가 확인 절차를 밟겠다”고까지 했다.
여야영수회담 제안은 거절했지만 만나면 물어볼 것은 많다는 것이다.
물 위에서는 2선 후퇴 없는 대통령 제안 수용 불가를 내세웠는데
물밑에서는 일정한 명분만 축적되면 국정운영권을 챙겨보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부분 축소시키고 식물정권으로 전락시킨 뒤 국정운영을 양분하여
손쉽게 차기 정권을 창출하려는 정략적 사고가 눈에 보인다.
야당 요구안의 최대치도 결국 박근혜의 대통령직 유지다.
2선 후퇴도 거국중립내각도 대통령은 박근혜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국정운영을 포기한다고 해도 결국 각서 한장일 뿐,
위기상황을 핑계로 헌법적 권한을 내세우면 되돌릴 방법이 없게 된다.
무엇보다 지금 청와대와 국민 간 갈등, 대통령으로 집중된 모든 정치사회적 관심을
일단 국회로 가져오겠다는 얕은 계산일 뿐이다.
안하무인으로 살아온 박 대통령이 야당 제안을 수용할 테니 만나달라고 애걸한 진풍경은 분명 야당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기득권 집단 내부의 갈등, JTBC의 용기 있는 보도, 대폭발한 민중의 분노가 박 대통령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청소년부터 대학교수까지 형형색색 광장을 수놓으며 “이게 나라냐”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외친
국민의 거대한 힘 덕이었다.
아무 것에도 기여한 바 없는 야당 의원들이 총리 권력의 크기를 저울질하고
차기 정권 창출에 군침을 흘리는 모습은 참으로 눈꼴 사납다.
지금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12일 백만이 모인 광화문에서 “민주당 규탄”구호가 나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민은 야당과 청와대의 권력분점 따위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