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4일,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대사관 앞으로 몰려들었다.
20년 가까이 수요 집회가 이어져 오는 동안
참석했던 사람들의 몇 년 치에 해당할 많은 숫자의 사람이 모인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한명숙 총리와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씨 정몽준 씨
한 때 나의 열렬한 팬(?)이었던 이정희 씨 등등 거물급 정치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좁고 길게 찬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사람들 앞에는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어떤 물체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다른 집회완 달리 참석자들 얼굴이 묘한 기대감으로 상기되어 있었고 들떠 있었다.
한명숙 총리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참여정부 시절 총리로 재직하면서 여러분들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이 집회가 1,000회가 진행되도록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수요 집회에 자주 참석했던 이정희는 당연히 큰 박수를 받았고,
정동영과 이정희 그들이 어떤 말을 남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정몽준 씨가 단 위에 나타났었다.
인사를 하려고 머리를 숙이는데 바로 터지는 외침, "내려가! 내려가!"
꾸지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얼굴이 벌겋게 된 그가 다시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가려 시도하자
또 터지는, "내려가! 내려가!"
기왕 올라온 것 큰 절이라도 한 번 넙죽하고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 더 관심을 갖겠습니다!' 이러기라도 하지
마냥 서 있다가 끝내 미안하단 말도 못하고 그는 내려갔었다.
이어서 진행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과, 시민들의 모금으로 장만한
예쁜 나비가 잔뜩 그려진 승합차를 할머니들께 드리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의자에 꼿꼿이 앉아계시던 할머님들,
그 분들 중에 몇 분이 지금 남아 계시나?
5년 만에 찾은 일본대사관 앞은 기대감에 달뜨던 그날과는 다른
분노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 도착했었기에 이미 집회는 진행 중이었다.
소녀상을 만든 작가 부부가 참석해서 이렇게 말을 했다.
"왜 불편하게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했냐고요? 불편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불편하지 않을 겁니다.
철거요? 만약 야스쿠니 신사를 철거한다면 그때는 소녀상도 철거하겠습니다."
기습 시위를 해서 구속 당했던 아이들 30명이 오전 11시에 방면되었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직 애기 같아서 더 맘이 불편했었다.
그 중 한 여학생은 자신의 손가락이 뒤로 90도 각도로 꺽일 줄은 몰랐었다고 했다.
손가락도 다치고 인대도 늘어났다고 했다.
(학생들이 나온 걸로 끝난 게 아니라 불구속 입건이란다.)
시간이 6시가 넘어가면서 어둑어둑해지는데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지루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꼬맹이가 보였다. 아이한테 내가 미안했다.
아이들이 길에서 새해를 맞이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절부절하다.
무작정 떡국을 끓여주기 위해 나온 영등포 사신다는 유치원생 엄마와 일행들이
길에서 어설픈 난전을 펼쳐놓은 장면이다.
그래도 경찰에 허락해 줘서 이렇게나마 떡국을 끓일 수 있었다.
고맙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한테도, 경찰들한테도...
고마운 마음이 채 식기도 전에 뭐라뭐라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우루루 달리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린다.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그 순간 경찰이 아이들의 침낭을 빼앗아 달아나고,
그걸 본 사람들이 뒤를 쫓아 간 것이다.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경찰 측 고위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아주 위압적인 자세로 말했다.
"위험한 물건이라서 압수 수색하는 건데 왜들 이러냐?"
순사 나으리께서는 보온병 폭탄이 있었으니 침낭 폭탄도 있다고 생각하시나보다.
말 안 듣는 아이들이 다 얼어죽어야 속이 편할까.
은박지 한 장 깐 길바닥에서 7시간 함 있어 봐야 그 침낭의 소중함을 알까?
가수 이승환 씨와 주진우 기자가 전달한 담요도 빼앗겼지만, 나중에 잘 전달되었다고 한다.
(출처- 이승환 페이스북)
미국의 여성학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초경도 안한 13~14세의 어린 소녀들이 짐짝처럼 배편에 끌려가서 군인들의 성노예가 되었었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는
희생자를 위한 진정한 정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병신년은 왔는데 대한민국의 실종된 정의는 언제쯤 돌아올까?
종로에서 늦게 다니시는 분들이 계신가?
귀찮아도 한번씩 일본 대사관 앞으로 돌아들 보시라.
"이렇게 낮에는 여러분들이 찾아주셔서 괜찮은데요,
밤에는 저희보다 경찰분들이 훨씬 많아요.
밤에도 여러분들이 저희들을 보러 와 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앳된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었다.
낮에도 경찰들의 숫자가 더 많아 보였었는데 말이다.
손가락이 꺽였다는 여학생은 이런 말도 했었다.
"구치소에 있으니깐요, 따뜻해서 좋았어요. 떡국은 못 먹었지만 먹을 것도 잘 주고...
근데 오늘 여기 와 보니 다른 친구들한테 미안했어요...
우리가 46시간 구치소에 가 있을 때에도 계속 여기 추운 데 있었잖아요."
구치소를 나온 아이들은 다시 합류하여 침낭 속의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 했다.
다음 주부터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겨울 추위가 다시 시작 된다고 한다.
따뜻한 내 방이 답답해서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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