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문학 (15)]/˚♡。--- 고전소통

쟁지물공(爭地勿攻)

또바기1957 2022. 7. 29. 20:22

 

“이른바 ‘쟁지(爭地)’란 정치‧경제‧군사적 요충지로,

병가들이 반드시 얻으려고 다투는 땅을 말한다.

손자의 해석에 따르면 ‘내 쪽에서 차지하면 내게 유리하고,

상대가 차지하면 상대에게 유리한 땅을 쟁지라 한다.‘(‘손자병법’ ‘구지편’)”

 

그런데 손자는 반드시 다투는 이 땅에 대해 ‘공격하지 말고’

‘그 뒤를 좇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 말은 자신에게 유리한 ‘쟁지’의 탈취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맞는 전법을 채택하여 탈취하기나 고수하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손자와 오왕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왕 : 적이 먼저 당도하여 유리한 지역을 거점으로 삼고,

잘 훈련된 병사들로 싸우기도 하고 방어하기도 하면서

아군의 기습이나 각종 공격에 대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손자 : ‘쟁지’에서의 법(장예 張預가 인용한 주에는 이 뒤에 ‘양보하면 얻을 것이요,

얻으려 하면 잃을 것’이라는 구절이 더 있다)은

먼저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적이 그것을 먼저 차지했다면 신중해야지 섣불리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적을 현혹하여야 하는데,

병사를 이끌고 거짓으로 철수하는 척하며 아군을 미리 매복시켜놓고

적이 아끼는 곳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곳을 빼앗습니다.

그러면 적은 반드시 구원하러 나올 것입니다.

상대가 욕심내면 주고 상대가 버리면 취하는 것,

이것이 선수를 차지하는 이치입니다.

내가 먼저 차지하고 적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내 쪽에서는 정예병을 선발하여 그곳을 지키고 날랜 병사로 추적하면서

험한 곳에 복병을 숨겨놓고, 적과 싸울 때 복병이 용감하게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벽한 승리법입니다.

 

‘쟁지물공’은 ‘쟁지’를 공격하여 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선점(先占)과 ’후점(後占)‘에 따라 다른 전법을 취하라는 것이다.

 

‘백전기법’ ‘쟁전(爭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적과 싸울 때 형세가 더 유리한 곳을 먼저 차지하고서 싸운다면 이길 수 있다.

만일 적이 먼저 차지했다면 공격해서는 안 된다.

적의 변화를 살핀 후 공격해야 유리하다.

 

‘쟁지’에 대한 ‘백전기법’의 인식도 ‘손자병법’과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234년, 제갈량은 10만 병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북원(北原)의 요충지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면 ‘농도(隴道)를 단절하여’ 위나라 군대를 출전케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위의 장수 곽회(郭淮)는 제갈량의 속셈을 알아채고 먼저 북원을 차지해버렸다.

곽회는 요충지를 거점으로 촉군을 맞이해 잘 싸웠다.

제갈량이 북원을 공략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제갈량은 ‘쟁지물공’의 이치를 깊이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며칠 뒤 사기가 왕성한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진군했다.

곽회의 부장들은 제갈량이 북원이라는 요충지를 포기하고

위군의 본영으로 진군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제갈량의 의도는 적이 먼저 요충지를 차지했기 때문에

일부러 물러나는 척하며 적이 중요하게 여기는 곳으로 달려감으로써

적이 구원에 나서도록 유인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의도 역시 곽회에 의해 간파 당했다.

그는 ‘제갈량이 서쪽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필시 동쪽을 치기 위함이다’고 판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촉군이 북원 동쪽 끝의 양수(陽遂)를 공격해왔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곽회는 제갈량의 공격을 잘 물리쳤다.

이리하여 제갈량의 북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쟁지물공’은 공격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며 차지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계략으로 승리하라는 것이다.

 

‘쟁지’는 누구든 먼저 차지하는 쪽이 유리하다.

따라서 군사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선제공격을 통해 먼저 차지할 것을 강조 한다.

쟁지를 빼앗는 전쟁에서 어떻게 작은 대가를 치르고 승리하느냐는

어느 쪽의 책략이 더 나으냐에 달려 있다.

 

쟁지에 대해서 이 두 가지 처리 방법밖에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또 다른 상황들이 있다.

만약 요충지가 비어 있어 쌍방이 힘을 다해 쟁탈전을 벌이면

승부는 좀처럼 판별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의 여부는

요충지와의 거리‧도로 상황‧운송 수단‧진군 속도 등에 달려 있다.

부대를 빨리 진군시켜 요충지의 후방에 이르면,

적이 들어올 도로에 유리한 진지를 치고 적의 진군을 막음으로써

주력 부대의 진지 점령을 엄호한다.

만약 적이 이미 쟁지를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안정된 기반을 내리지 못해 인심이 불안하고 아군의 실력이 절대 우세라면,

그 기세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반대로 아군이 요충지를 차지했지만

병력면에서 적이 절대 우세여서 고수하기 힘들다면,

과감하게 그 땅을 포기하여 적이 차지하게 한 다음 적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쓰며

기회를 엿보다가 적을 습격, 우세를 차지한다.

그런 후에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 재탈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