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문학 (15)]/˚♡。--- 고전소통

전풍(田豊), 상사를 잘못 만나면

또바기1957 2022. 4. 12. 18:07

원소를 보좌하여 하북의 패자가 되도록 한 책사의 비극

 

전풍(田豊 ?~200)은 후한 말의 인물로

자가 원호(元皓)이며 기주(冀州) 거록군(鉅鹿郡) 출신이나

일설에는 발해군(渤海郡) 출신이라고도 한다.

 

원소를 섬긴 호족 출신의 모사로 원소의 세력확대를 크게 도와

원소군의 대표적인 모사가 되었으며,

조조군의 순욱과 비견될 만큼 뛰어난 재사로 평가받았다.

 

전풍은 성장하면서 재주가 뛰어났고, 웅대한 계략은 다수의 눈을 집중시켰다.

젊었을 때 아버지를 잃어 상중에 매우 슬퍼했으며,

세월이 지나도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지 않았다.

박학다식하여 주(州)의 사람들로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처음엔 태위(太尉)의 처소에 초빙되어 무재(茂才)로 추천되었고,

이후 시어사로 승진하였다.

하지만 환관이 조정에서 득세하는 것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전풍은 심배와 더불어 기주목 한복을 섬겼는데,

두 사람은 정직했기 때문에 한복에게 소외되었다.

 

191년, 원소는 한복의 세력을 흡수한 후 좋은 말로 전풍을 초빙하였다.

전풍은 황실이 곤란에 처했고,

난세를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원소에게 갔다.

 

원소는 전풍을 별가, 심배를 치중에 임명하여 중용하였다.

훗날 원소의 명령으로 한복을 섬겼던 경무와 민순을 죽였다.

 

그해 겨울 공손찬과 계교에서 전투를 벌일 때

이기고 있던 원소가 방심하고 적은 수의 병사만 이끌고 쉬던 도중

공손찬군에게 공격받아 위기에 처했다.

이때 전풍은 원소에게 후퇴할 것을 권했으나,

원소는 투구를 내팽개치면서 도망치는 대신 싸우고자 했고

그 기세에 밀리던 공손찬군은 국의가 이끄는 주 병력이 오자 마침내 달아났다.

 

196년, 조조가 헌제를 허도로 맞이하였는데,

그해 전에 전풍이 먼저 헌제를 맞이할 것을 원소에게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원소는 헌제를 견성으로 모셔올 것을 조조에게 권유했다.

조조가 이를 거절하자 전풍은 원소에게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데려올 것을 건의했지만 원소는 듣지 않았다.

조조가 장수를 포위하고 있을 때

전풍은 다시 한번 원소에게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맞이할 것을 진언했지만,

원소군 휘하의 탈주병이 이 계획을 조조에게 전했기에

조조는 포위망을 풀고 급히 돌아왔다.

 

정사 원소전에 주석으로 달린 전풍전에 따르면

원소는 전풍의 모책을 이용하여 공손찬을 평정했다.

원소는 전풍 덕분에 숙적을 물리치고 하북의 패자가 된 것이다.

 

원소는 허도를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는데,

심배, 봉기에게 군사를 통괄하게 하고 전풍, 순심, 허유를 참모장으로,

안량 . 문추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여기서 전풍은 저수와 함께 지구전으로 싸울 전략을 주장했으나,

원소는 심배, 곽도가 주장한 단기 결전 전략을 채용하였다.

 

원소의 군대 동원 소식을 접한 공융이 조조에게

전풍, 허유라는 지혜로운 자가 참모가 되었으니,

승리하기가 어렵겠다고 걱정하자,

순욱은 전풍이 억센 인물로, 반드시 윗사람을 거스를 것이라고 평했다.

 

200년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하고 팽성을 점령하고

조조를 배신하자 조조는 유비를 직접 치기 위해 출정한다.

 

전풍은 이때가 조조의 뒤를 칠 호기라고 보고 원소를 설득했지만,

원소는 자식이 아프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전풍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평생 찾아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겨우 어린아이 병 때문에 놓치다니

애석하다고 말했고 이에 원소가 분노하며 둘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 원소가 조조를 치려 하자,

전풍은 원소에게 지구전을 펼치고 농사를 짓고 기병을 운영해

성동격서로 조조를 지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서서히 말려 죽이자는 건데,

앞서 서둘러 조조를 치자고 하던 것과 비교하면,

갑자기 말을 바꾼 것 같지만 그저 상황이 달라졌기에 그런 것뿐이다.

 

그렇지만 원소는 조조와 전면전을 펼쳐 단기 결전으로 빠르게 끝내고자 했다.

전풍은 재차 간곡하게 원소에게 진언했는데

결국, 원소는 크게 노해서 군기를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전풍이 종군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는 원소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기뻐했다.

 

원소군이 조조와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돌아오자,

장군들은 모두 울면서 이전에 전풍의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패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고,

어떤 사람은 전풍에게 “주공(원소)이 이젠 그대를 중용하실 걸세”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전풍은 고개를 저으며

“주공이 겉으론 관용이 있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많아,

만약 승리했다면 기쁜 마음에 나를 사면하겠으나 패배하여

날 볼 면목이 없을 테니 더 살 희망은 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소전의 주석 선현행장에 의하면,

원소는 “기주 사람들은 모두 내가 패배한 소식을 듣자 모두 나를 걱정하였소.

다만 전풍만은 나를 꾸짖었기에 다른 이와는 다르오.

나는 이제 전풍의 얼굴을 부끄러워서 볼 수가 없소.”라고 말했다.

 

이때 봉기는 “전풍은 공이 패한 소식을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적중한 것에 기뻐한다고 합니다.”라고 참언(讒言)을 했다.

원소는 이 말을 듣고 전풍을 해치려는 뜻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전풍의 예상대로 패하고 돌아온 원소는 전풍을 살해했다.

이때 원소는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자신이 패했으니 전풍에게 조소당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도대전만 보더라도

전풍은 두 번이나 예리하고 유용한 계책을 냈지만, 원소는 묵과했다.

이것을 두고 조조는

“전풍의 계책이 채택되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원소일 것이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그가 재사로서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수준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심지어 삼국의 건국세력이 아닌 인물들에겐 평가가 매우 박했던 진수조차도

전풍과 저수의 책략은 장량과 진평이 한 고조에게 헌상한 책략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고 평가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순욱이 원소 세력을 분쇄할 때도 전풍은

“강인하나 윗사람을 거스리며”라고 비판했다.

 

당시 순욱의 비판들은 소름 돋을 정도로 맞아떨어졌는데,

그가 평한 원소군의 다른 무장들의 단점은 부패와 비리가 심하다는 것(허유),

계획성이 없고, 침착하지 못하다는 것(심배),

주변의 말을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것(봉기),

지혜와 임기응변이 부족하다는 것(안량, 문추) 등등이었다.

 

반면, 전풍에 대해서는 능력이나 도덕적 측면이 아닌,

너무 강직하여 윗사람과의 대립에서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는 것이 흠이라는 평을 한 것이다.

 

순욱의 평가는 강대한 적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므로,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었다.

따라서 어떻게든 상대의 단점을 강조하며 깎아내리려 했을 터인데,

전풍의 단점을 강조한답시고 이야기한 게 겨우

“지나치게 강직하여 윗사람과 부딪친다”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순욱의 말대로 전풍의 성격이 본인에게 독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관대한 주군에게는 문제도 아닐 사항이다.

실제로 순욱 본인 진영의 곽가는 자기 계책을 채택 안 하면

조조의 바로 앞에서 침을 뱉는 등 “윗사람과 부딪친다”의

수준을 넘어선 무례를 범하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관도대전에서 그가 내놓은 계책이 빈번히 무시당한 것에 있어서는

“강직하여 윗사람을 거스른다”라는 순욱의 인물평을 기초로,

다소 독선적인 면이 있던 원소와 사이가 틀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전풍 역시 화북에 나름 세력기반을 갖춘 호족 출신이었던 만큼,

원소 입장에서는 전풍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때문에, 원소가 전풍을 무시하게 된 것으로 보이며

그리고 일단 주인하고 사이가 틀어지고 나니

전풍의 대쪽 같은 성격이 더더욱 안 좋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전풍의 입장에서는 원소의 당장 눈에 보이는 큰 문제가 없고,

어떻게든 성공은 했어도 큰 삽질을 하는 셈이니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원소 입장에서는 이런 전풍의 태도가 좋게 보일 리가 없고

이게 더더욱 둘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건 당연하다

 

결국, 관도대전의 패배 이후

분노한 원소의 분풀이와 봉기의 부추김으로 옥에서 죽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