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을 모아 시집을 내려했던
청년 윤동주는 친필로 써온 원고들을 꼼꼼히 제본한 뒤
연필로 표지에 두 글자를 써 넣었습니다.
'병원'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병원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에
혹시 이 시집이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윤동주의 사후에 고이 보관해왔던 시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지인 정병욱은
당시의 그의 말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암흑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한없는 부끄러움을 이야기했던 젊음.
출간 하고팠던 그 시집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어
원고를 서랍장 깊이 넣어야 했던 그는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
시인이 남겼던 이 말은 시공을 초월해 2016년 가을의 한국사회에 투영됩니다.
상상을 뛰어넘고, 상식을 무력화시키는 의혹들이 넘쳐나
교양과 인내의 영역을 이미 벗어나 버린 지금…
마음을 다친 사람들은 아마도 이 시구에 공감할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윤동주 < 병원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길 바라던 그 시인이
지금 우리 곁에 있었다면…아마도 마냥 부끄러웠을 것만 같은 자괴감의 시대.
그렇습니다.
그가 당초 '병원'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었던 그 시집은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인의 절절함에 비해 발행된 시집의 제목은
오히려 낭만적이어서 당혹스러운 오늘…
원 표지에 그가 썼다가 지운 '병원'이란 글씨는
역력해서 또한 오히려 공감이 가는 오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