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씨의 봄날 / 오인태
봄날이 간다
지난 여름에도 가고, 가을 한 때에도 갔던 김씨의 봄날이
이 겨울날, 철없이 불려와 또 이렇게 가고 있는 중이다.
벌써 대여섯 해 되었다던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자던 알뜰한 그 맹세,
십 년도 채 못 지키고 그의 연분홍치마는
눈망울 새까만 자식 둘마저 내던지고
어느 산제비같은 놈을 따라 역마차를 탔다는데,
옷고름 대신 허구헌날 때 절은 물방울무늬
넥타이를 씹어가며 봄날을 불러 보내는
김씨의 생은 오늘 아침에도 연성,
또는 중성세제, 그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일어서는 거품처럼 부글거렸으리라
남들은 뽕도 따고 님도 본다는데, 뽕도 잃고 님도 잃은 전직교사,
지금은 그의 연분홍치마를 대신하여 보험설계사가 된 김씨,
마른하늘 벼락처럼 뒤집어쓴 흙탕물 씻을 길은 아직 멀고,
이렇듯 나는 또 하릴없이 그의 삐걱거리는 노래에 맞춰
청노새 방울 대신 속없는 탬버린이나
짤랑대어주지만, 내내 울퉁불퉁 자갈길을 엎어질듯
달려가는 그의 생에 그만 실없어져 더 이상 이 얄궂은
운명의 박자를 맞춰줄 수가 없다
술이나 마시자
김씨, 그의 어깨가 아닌 봄날 꽃잎처럼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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