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서프 / 이기호 / 2008-7-17)
당 태종(唐 太宗) 이세민(李世民)은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을 통해
형 건성(建成)과 아우 원길(元吉)을 제거한 뒤 아버지인 고조(高祖) 이연(李淵)을 감금시켰다.
3일 만에 황태자에 오른 태종은 2개월 후 양위를 통해 27세의 나이로 당나라의 2대 황제에 오른 인물이다.
'현무문의 변'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라는 태종에게 오점으로 남았다.
하지만, 기실 더 큰 오점은 당해(當該) 군주에게는 절대 열람이 금지된
실록(實錄)을 들춰본 최초의 인물이 태종이라는 점이다.
후대에 만들어진 원칙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태종이 여러 신하들의
'이유 있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자신의 역사를 들여다본 것은 분명 사실이다.
감수국사(監修國史) 방현령(房玄齡)과 간의대부(諫議大夫) 주자사(朱子奢)는
"만약 군주에 관한 기록을 직접 어람(御覽)하는 관습이 후대에 전해지면
후손들 가운데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아름답게 가장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며
"그러면 올바른 역사를 남길 수 없다"고 만류했지만 태종은
"전날의 잘못을 알아 후일(後日)의 경계로 삼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방현령은 고조와 금상(今上 : 태종)에 관한 실록을 만들어 보여줬고,
태종은 제일 먼저 '현무문의 변' 조항을 찾았는데 아주 애매모호하게 기록돼있었다.
이에 태종은 "사관(史官)은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될 일이지 꾸밀 필요가 없다"며
사실대로 고쳐 쓸 것을 명령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고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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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이 15일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 중간점검을 위해 자전거로 이동하고 있다. ⓒ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
한나라당이 1400년 만에 시도하는 '歷史改變'
7세기 중국에서 발생했던 이 '좋지 않은 선례'가 1,400여 년이 흘러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에서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신문이 지난 14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이
전직 대통령만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한 비공개기록물을 현직 대통령도 열람이 가능하도록
대통령기록물 관리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개정배경에 대해 김 의원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은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
입법 취지인데도 불구하고, 보호기간(15∼30년)이 지정된 대통령 지정기록물(비공개 기록물)의 경우에는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만을 인정해 현직 대통령의 국정운영 연속성과 국가적 중대사안에 대한
기록물의 활용에 심각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생산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정무직 공무원 인사파일, 대북관련 문서 및
국방부 기밀서류 등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동의나 법원의 영장 없이 열람할 수 있게 된다"며
"현직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 또는 보복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김 의원은 "최근 노 전 대통령의 기록물 무단유출 사건과
비공개 기록물 목록까지 감추고 있는 모습 등 기록물의 사유화 행위를 보고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라며 정치적 배경을 숨기지 않았고,
이는 "현직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게 한다면
대부분의 기록을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가기록원 관계자의 우려와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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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발전전략 토론회에서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종모 부산시의회 의장, 허남식 부산시장, 이 대통령, 김정훈 한나라당 시당위원장, 안홍준 한나라당 제5정조위원장 ⓒ 청와대 |
전직 대통령과 정치게임이나 하는 한가한 청와대
"2007년 초부터 임기 마지막까지 청와대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업무로 홍역을 치렀습니다.
반대하는 참모들은 감당 못할 업무량, 공개에 따른 부담, 사후 정무적 악용에 대한 우려 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런 모든 문제를 대범하게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모든 기록물은 소상하게 남겨야 한다고 강조한 기억이 납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14일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에
"또다시 바보 노무현"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의 지적처럼 "다른 대통령들처럼 이관기록은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사저로 가져가면 생기지도 않았을 문제"였지만
참여정부는 건국 이래 역대 대통령이 남긴 모든 기록물 33만여 건보다
무려 25배가 많은 825만여 건을 남겼다. 그게 옳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법으로 보장된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을 제한하고,
나아가 현직 대통령이 볼 수 없도록 규정된 법까지 바꾸려고 시도한다.
역사가 이미 '모범답안'을 제시해놓았는데도 말이다.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이냐" 는
노 전 대통령의 16일 공개질문은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기록사본은 돌려드리겠다"며 현직 대통령에게 '항복'했으니 좋기도 하겠다.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 데리고 일해야 하는 고충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명분도, 역사의식도, 정치력도 없는 정부의 현실인식에 국민의 한숨은 높아진다.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일보)이 아무리 뒤를 받쳐도 지지율이 바닥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시(時)와 절(節)을 알았던 리더 와 알지 못하는 보스,
역사의 흐름에 순응했던 리더 와 불도저처럼 역행하는 보스,
국가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대비했던 리더 와
좀스럽게 혼자만 기록을 들춰보고 싶어 하는 보스의 대립은
결국 그릇의 크기(器量) 차이만 드러낸다.
역사는 결국 칼자루를 쥔 보스를 외면하고 항복한 리더의 'KO승'을 선언한다.
그게 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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