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자료](19)/˚♡。─-국외관광

[스크랩] 울타리에서 우는 매미

또바기1957 2008. 7. 8. 00:36

지난해 4월 아내가 협심증이 심해서 혈관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할 때 사고가 일어나도 병원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와서 

아내는 좀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의술도 발달되고 아들이 근무하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것이니 

안심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기는 하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술날짜를 모레로 잡았다고 하면서 내일 화분을 사다 놓아야겠다고 한다.
지난해 집수리를 하면서 한 평 반 정도의 공지가 생겼다. 

공지래야 4층 꼭대기 시멘트 바닥이다. 

봄부터 화분이랑 채분(菜盆)을 사오겠다고 하면서 미루어 오다가 

갑자기 수술 전에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수술 전 몸도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니 

수술 후에 하라고 해도 굳이 수술 전에 하겠다고 한다. 

혹시 어떤 예감이 들어 그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강력히 말릴 수도 없었다.


강남과 강북의 꽃시장에 가서 장미와 베고니아 치자 등 

꽃과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의 어린 싹을 분에 심은 것을 사왔다. 

아직 두돌도 안된 손녀에게 물들여줄 봉선화도 있었다.
그리고 둘레에는 사철나무로 삥 둘러 울타리를 만들었다.


아내는 작업이 끝나자 말끔히 비질을 하고 무척 흐믓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래서 아내는 수술 전에 4층 옥상에 

채전(菜田)이 아닌 채분(菜盆)을 늘어놓은 것이다.


수술은 비교적 순조로웠다고 하면서도 

6개월 후에 한 번 더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한다. 

아내가 퇴원 후 집에 돌아와서는 꽃과 채소들이 

싱싱함을 보고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다행이도 꽃과 채소들이 잘 자라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장미는 물론 토마토, 가지, 고추 등이 잘 자랐다. 

나비와 벌이 날아들지 않는다면 수분이 안 되어 

결실을 걱정했는데 노랑나비 흰나비와 벌들이 날아왔는지 

자연의 신비에 감탄할 뿐이다. 

 

참새가 날아들어 채분을 오르내리며 무엇인가 쪼아 먹고 

사철나무 가지에도 오르락내리락 한다. 까치도 날아들어 한 몫을 한다.
이러한 4층 꼭대기에 나비와 새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 화분과 채분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화분과 채분이 곤충과 새들을 불러들일 줄은 정말 몰랐었다. 

우리 집 화분과 채분이 자연계의 일부로 등록한 셈이다. 

아울러 곤충이나 새들이 자연의 포플러나무에 

얼마나 굶주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9월 중순이었다. 

서재에서 원고를 쓰고 있는데 매미소리가 들려 왔다. 

도로변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거기서 나는 소리로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매미 소리가 가까이서 나는 것이 아닌가.


일층에 음악사가 있어 거기서 가끔 새소리를 내보내는데 

오늘은 매미소리를 내보내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매미 소리는 아래서 올라오는 소리가 아니고 바로 옆에서 울었다. 


살몃살몃 나가보았다. 

울타리로 심은 사철나무에 붙어 우는 것이 아닌가. 

쓰르람, 쓰르람 목청을 돋우어 운다. 

매미가 4층 꼭대기에 와서 운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매미는 시멘트 숲속 좁은 녹지 공간에 와서 우는가.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이 쓴 책에 의하면 

여염집 여자들이 매미를 구워먹는 습성이 있었는데 

매미를 먹으면 목소리가 아름답고 청아하기 때문이라 한다.


내가 하도 노래를 못 부르니까 날 잡아 구워먹고 

노래 좀 잘 하라고 일부러 매미가 와서 울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매미는 햇볕을 피하여 허물을 벗음으로써 새로 태어나기 때문에 

재생과 부활과 탈속의 상징으로 찬미되었다. 

 

따라서 신선이 변신하거나 고승이 해탈할 때 선세라고 하는데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뜻이다.


4~6년 땅 속에 유충으로 있다가 번데기가 되어 

껍질을 벗고 비로소 매미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가 세속에 젖어 있으니 해탈하라고 

해탈해탈 하고 우는 것은 아닌지.


삼복이 지나서 우는 매미를 기울매미라고도 한다. 

삼복이 지난 지금은 모든 곡식이 익어서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계절이라서 

기울기울 울기 때문에 기울매미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내가 아직도 목에 힘을 주고 있으니 

목을 아래로 기울이란 말인가.


유교전통에서 매미는 다섯 가지 덕이 있다고 하여 숭앙되고 있다.
매미의 머리부분 관(冠)이 끈이 늘어진 형상이므로 

문(文)의 덕이 있고 매미는 오로지 맑은 이슬만 먹고살므로 

그 맑고 깨끗한 청(淸)의 덕이 있고, 

 

매미는 사람이 먹는 곡식을 먹지 않으니 

그 염(廉)의 덕이 있고 다른 벌레들처럼 굳이 집은 짓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사니 그 검(儉)의 덕이 있고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틀림없이 울며 절도를 지키니 신(信)의 덕이 있어 다섯 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했다.


매미에 비해 나는 관이 없으니 문(文)의 덕이 없다 하겠고 

문(文)의 관은 끈이 늘어진데 비해 나는 이마에 

주름살로 가로금이 있으니 더구나 문(文)의 덕이 없다.


매미는 맑은 이슬만 먹는데 비해 나는 그렇지 못하니 

청(淸)의 덕이 없고 매미는 곡식을 먹지 않는데 비해 나는 

곡식 뿐더러 물고기를 먹으니 그 염(廉)의 덕이 없다.


매미는 집이 없는데 비해 나는 집에 살고 있으니 

검(儉)의 덕도 없고 매미는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는데 

나는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지 못했으니 신(信)의 덕도 없다.
그러니 나는 매미의 다섯 가지 덕을 따라 갈 엄두도 못 낸다.


그렇지만 아내는 올해 채분을 이루어 매미를 초대했으니 

매미가 허물을 벗고 재생하듯 두 번째 수술에서도 모든 아픈 허물을 벗고 

건강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면 그런 뜻에서 매미가 와서 울어주었는지 모른다.

출처 : 미리내 문학관

저자 : 서정범

옮김 : 또바기

출처 : 미황
글쓴이 : 또바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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