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따라왔다.”
신문사 경찰 출입기자 김서영 씨 ‘고백’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출입하는 경찰서부터 쫓아온, 난생 처음 보는 남자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다가
가까스로 벗어날 때까지의 ‘소름끼치는’ 경험담을 공개했다.
최근에 나온 책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프북스, 유숙렬 등 지음)에서 나온 이야기다.
20대부터 60대까지 대한민국 페미니스트 26명의 고백을 모아서 펴낸 책이다.
내겐 충격적이면서 울림이 컸던 이 책의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이 책에서 언급된
‘남성 잠재적 가해자론’에 대한 내 생각을 쓰겠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은 ‘여성 혐오 범죄’로 인식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
여성들은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봤고 이에 대해 많은 남성들이 분노했다.
여성들의 피해의식이 애꿎은 남자들만 범죄자로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성들의 보편적 ‘피해 경험’을 피해의식의 산물로 치부하는 사람은
잠재적 가해자에서 ‘일상의 가해자’가 된다고 김 기자는 말한다.
나는 모든 남자들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남자로서 억울하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게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대한민국 보통 남성인 당신이 밤에 골목길을 혼자 걸어간다.
조명도 어두운 좁은 길 저 쪽에서 덩치가 큰 사람이 모자를 눌러쓰고 벽에 기대서서 당신을 힐끗힐끗 본다.
이때 모자 쓴 남자는 당신에게는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 (그가 누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관없다.)
남자 어른들끼리 가끔 하는 말이 있다.
“골목길을 가는데 고삐리들이 모여서 있더라구. 겁나대. 요즘 고삐리들 무섭잖아.”
이때 고딩은 아무 죄 없이 삼촌들에게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
만약 ‘고삐리’들이 삼촌뻘, 아버지뻘,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을 잡아 패고, 돈을 뺏고,
심지어 “30대 이상 늙은이들은 다 죽어야 돼.”, “늦은 시간에 나돌아 다니게 하면 안 돼.” 하면서
살인하는 일까지 종종 일어나고, 이런 일들이 언론에 크게 보도가 돼 사회 문제가 됐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고딩들은 모든 삼촌들에게 무서운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
집에 있는 조카 고딩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남성 인구의 절반이 고교생이라면?
길 걷는 것조차 무서운 일이 된다.
세상 반은 남자고, 평균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센데,
남성에 의한 ‘여성 혐오 강력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모든 남자가 ‘여성에게’ 잠재적 가해자가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당신이 어떤 남자인지 무관하게.
대부분 경우 물리적 폭력도, 성 폭력도 남성 문제이지 여성 문제나 그 외 다른 문제가 아니다.
물리력서 우위에 있는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가하는 폭력과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사성은 있다.
힘센 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물리력 촉발 요인은 양자가 다르다.
남남 폭행은 적나라한 물리력의 강약에 기초한 힘 과시, 재물과 짝 등 물적인 것이지만
남녀 폭행은 이데올로기가 끼어든다.
수천 년 동안 형성돼 온,
그래서 남성한테는 거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심리,
가부장제에 따른 권위의 내면화 등 요인이 잠복돼 있다.
예컨대 이런 발언. “여자가 왜 늦은 시간까지 노래방에…”
남성들이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고,
인정한다고 해도 그래서 어쩌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인정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고,
거기서 어떤 시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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