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취(心醉)
夫人之醉, 在所醉之如何, 不必待飮酒而後矣.
紅綠眩暈, 則目或醉於花柳矣. 粉黛駘蕩,
則心或醉於艶婦矣. 然則是書之酣暢而迷人者,
何渠不若一石而五斗也耶?
-이옥(李鈺, 1760-1812), 〈묵취향서(墨醉香序)〉
대저 사람의 취함은 어떻게 취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반드시 술 마신 뒤를 기다릴 것은 없다.
붉은 꽃과 푸른 잎이 눈앞에 어질어질하면
눈이 혹 꽃과 버들에 취한다.
곱게 단장한 여인이 정신을 어지럽게 하면
마음이 혹 어여쁜 여인에게 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달콤하게 취해
사람을 몽롱하게 하는 것이
어찌 한 섬이나 다섯 말 술만 못하겠는가?
자료출처 鄭 珉 한문학
귀양지에서 술을 사 마실 돈도 없고,
책 한 권 빌려볼 데 없던 무료함 속에서
때마침 이웃에서 책을 선물한다.
술꾼이 여러 날 술에 굶주리다가
술단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겠지.
정신없이 책에 빠져 열심히 읽다 보니,
“눈에서는 꽃이 피고, 입에서는 향기가 나와,
위장 속의 더러운 피를 닦아내고,
마음 속에 쌓인 때를 씻어주어
정신이 편안하고 몸이 개운하게 하였다.”
술 먹고 취하는 것만이 취하는 것이 아니다.
꽃에 취하고 버들에 취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에 취하는 것도 취하는 것이지만,
이토록 책에 달게 취해
몽롱한 흥취를 느껴보는 것이야 말로
정말 거나하게 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매일 술에만 취하고
여색에만 취하는 주정뱅이 호색한은
이 거나한 흥취를 알 길이 없으리라.
제작:왕언니